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30대 초반. 나이로는 나보다 한참 젊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중 무겁고 진지한 곡을 칠때 그런다. 살면서 어둡고 힘들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치면 좋은데 자기는 아직 그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올리브 키터리지 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인생의 밝고 즐거운 면 보다는 허망하고 쓸쓸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선생님은 제목을 받아적었다.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두번씩 읽은 책이고 피아노 선생님을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한 책인데, 과연 권할만 한 책일까.
이 책의 문학성이나 가치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기 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느 날 이해 못할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책, 사건보다는 내면, 쓸쓸함, 외로움, 분노, 체념, 그러다 간간히 찾아오기도 하는 다정함 정도. 과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는 인생의 진실을 꼭 책까지 읽으면서 알아야 할까. 읽어보라고 권할만 한가.
안그래도 사는 건 만만치 않다. 몸으로 느낀다. 인생이 그런거라고 확인시켜 주는 무엇 보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저자에게 묻고 싶다.
이 책의 뒤에 보면 부록으로 출판사 독자 모임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 마을의 도넛 가게에서 만나 나누는 좌담이 실려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 어떠 인물이 가장 쓰기 쉬웠냐는 물음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스트라우트라고 말한다.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에 확신이 있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저자는 분명히 올리브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그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올리브의 입장에서만 쓰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헨리와 드니즈의 관계를 써나갈때 ('Pharmacy') 올리브를 생각하며 안타까우면서도 헨리 마음의 움직임과 드니즈의 순수함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없다. 그건 Starving에서 하몬과 데이지를 볼때고 마찬가지였다. 올리브라는 인물에 대해 적응이 되어있지만 아들 크리스토퍼가 엄마에 대해 그동안 그가 받은 상처에 대폭해 엄마에게 무서울정도로 침착하게, 두려움없이 거의 고발하는 수준으로 쏟아낼때 ('Security') 어린 크리스토퍼가 엄마로부터 받고 싶었으나 받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어 가슴 아팠다.
제일 우울하고 어두웠던 느낌을 받은 것은 Tulip. 인물 이해가 좀 어려웠던 것은 Criminal의 레베카.
슬픔은 개인적이지만 삶은 개인의 비극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준 Incoming tide의 케빈이 마지막에 패티를 구해내는 대목.
절망과 회의를 주기만 한 것은 아닌가보다. 마지막 단편 River에서 올리브가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 것 처럼.
이 책을 통해 냉기 뿐 아니라 온기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안전하게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냉기를 좀 더 많이 느꼈는지도 모르고, 책을 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이 책의 저자에게 감탄하면서도 이 책을 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