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
  • 반자본 발전사전
  • 볼프강 작스 외
  • 28,800원 (10%1,600)
  • 2010-12-13
  • : 501
원제는 《The Development Dictionary》.
역자는 Development 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두고 책을 시작한다.

본문의 주요 개념인 development는 보통 '개발'로 옮겨질 때가 많다. 그러나 '개발'은 이미 긍정적 의미를 많이 잃은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의도는 우리가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위험한 뜻을 담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옮긴이는 보았기에, 이미 부정의 뉘앙스가 강한 '개발'은 번역어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긍정의 뉘앙스가 더 강한 '발전'으로 옮기는 것이 저자들의 뜻에 부응하는 공정한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P.6 일러두기 중에서

개발 또는 발전의 의미로 사용되는 'Development'에 대한 사전dictionary이라는 제목.
흔히 쓰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 '옮긴이의 글'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의 눈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나의 현실을 보고 남의 눈에 속박당하는 것, <反자본 발전사전>의 문제의식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p.655

<反자본 발전사전>은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전제에 깔린 또 다른 숨은 전제를 까발린다. -p.659

'발전'을 포함하여, 관습적으로 의미가 제한되고 어느새 '조작'까지 되어버린 19개의 흔히 사용되는 용어에 대해, 그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고 '새롭게 정의' 내리는 작업을 사전(Dictionary)에 비유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자"는 것이 저자들의 근본 취지.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았지만,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깔려 있는 듯하다.


◆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1)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그럴까?
(2) 해결책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3)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한 해결책일까?


일단, 그들이 새롭게 의미를 조명하려고 하는 19가지 용어란 다음과 같다 :
발전, 환경, 평등, 도움, 시장, 요구, 한 세계,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책을 읽기 전에, 스스로 이 개념들에 대해 어떠한 '개념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한번 확인해볼 일이다.

그 익숙한(?) 개념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어떻게 만들어졌거나 각색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더 강조하면서 사용되고 있는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사실상 <反자본 발전사전>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저런 용어에 대해 나름의 뚜렷한 '개념적 정의'조차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개인적인 발견이었다.


      현대인은 레고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처럼 상투적 낱말을 전문어로 쓴다. 레고 조각처럼 인위적으로 짜맞춰진 그 낱말들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물까지도 떠받친다. 그런 낱말들은 내용은 없고 그저 쓰임새만 있다. 하지만 어떤 맥락하고도 동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갖고 놀기에는 딱이다. '참여'도 이런 낱말들의 범주에 들어간다. -p.253       
 


◆ 위의 3가지 질문에 대한 간략한 맛보기는 다음과 같다 :

(1)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그럴까?

나머지 18개 개념과 상호 연관이 되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맥락에서 변형된 후 현대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한다.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의 '저발전 지역'을 없애기 위해 '발전의 시대'를 선언했는데, 이후로 '발전development'은 '저발전'이라는 식민화의 속성을 지닌 새로운 개념과 짝을 이루어 세계화, 자본주의, 경제 최우선 주의, 몰개성화, 문화적 다양성의 저해 등을 세계에 전염시키는 현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것 ('밈'이 연상되는 대목). 저자들은 서양의 패권주의가 정치학과 경제학만이 아니라 이처럼 인간의 정신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꾸만 긴장으로 몰아넣고 생물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 곧 발전이라는 생각이다. -p.8

세계화는 국민 국가 없는 발전이라고 보아도 온당하다. (중략) 발전은…초국가 경제 복합체의 확산과 함께 이루어지는 만국 중산층의 형성을 뜻하게 되었다. -p.10

발전 사상은 …서구의 창안물이긴 하지만 서구가 비서구 세계에다 무작정 떠넘긴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현대 공업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전이라는 세계관을 받아들이자 문화에서 자기정체성을 찾는 권리에 금이 갔다. … 상상력의 식민화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미래를 향한 희망은 오직 부자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상만을 전범으로 삼는다. -p.12      

(2) 해결책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단 '발전' 등의 용어에 포함되어 있는 잘못된 개념들을 골라내어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난'은 물질적 선입견을 받아들이고, '평등'은 동질성으로 변질되고, '생활 수준'은 행복의 다양성을 줄이고, 최소한의 '요구'는 의존성의 덫을 부러뜨리고, '생산'은 가치를 수립하기 위해 가치를 박탈하고, '인구'는 통계적 인공물에 불과한 것으로 점차 드러난다. 핵심 개념들에 박혀 있는 시대적 특수성을 까발리는 작업은 정신을 해방시켜 앞날의 과제를 요리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 나서도록 자극한다. 이런 작업을 도우려고 낸 책이 <反자본 발전 사전>이다.

특히 말하고 싶은 것은 번영의 다양성을 재발견하지 않으면 공정의 개념을 다시 잡기도 어려우리라는 점이다. … 공정에 대한 소망을 경제 성장과 분리시켜서 공동체와 문화에 기반을 둔 복리의 관념에 재연결시키는 작업은 탈발전 시대의 초석이 될 것이다. -p.18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대안'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지역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풀뿌리 운동' 또는 직업 차원, 지역 차원, 온라인 차원에서의 '공동체'이다. (이 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또한 '정의'를 논하면서 하나의 획일적 정체성을 설정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생활터전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정의'를 고민해보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를 통한 '탈발전 운동'의 주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① 화석 연료 기반의 경제에서 → 생물다양성에 기반을 둔 경제로의 탈바꿈

 : 경제 성장이 세계에 더 큰 '공정(함)'을 가져오는 주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음
→ 공정을 빈민의 문제로 정의하고, 빈민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을 표면적 목표로 내세움
→ 경제성장에 생물물리학적 제약이 나타남 (화석 연료 기반 경제의 한계)
→ 빈민이 아니라 부자를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
   (결국, 빈곤의 경감은 부의 경감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 바닥 높이기가 아니라 천장 낮추기)

② 경제 위주의 세계관에서 → 문화, 민주주의, 정의의 가치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우선시

 - 덜 물질적인 번영의 관념을 모색하면서 자립, 공동체, 예술, 정신성의 차원을 넓혀가려는 노력
 - 인간의 복리는 돈을 넘어서는 많은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있음


(3)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한 해결책일까?

 -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환경, 윤리 문제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선진국이나 부자들보다는 저개발/개발도상국이나 부자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하여.
  (…라는 언급은 명확히 드러나있지 않다. 선진국과 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한데, 과연 무엇 or 누구를 위해서?)

1992년 초판에서는 '발전의 시대'가 이슈였다면, 2009년 개정판에서는 '세계화의 시대'가 이미 발전의 시대를 밀어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계화' 속에 '발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전히 이 논의는 유효함을 역설한다.
상호연관되어 현대 자본주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19개 개념 각각에 대해서는 본문을 통해 역사적 맥락과 사용 실태를 하나씩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 제 말 좀 들어보실래요?  



◆ 개념 재정립 그리고 풀뿌리 운동


저자들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다른 개념과 전제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사용되어 온 '낡은 단어들'을 해체하고 그 정의를 바꾸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것은 분명히 생각과 이론의 변화를 통해 물리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념 정의'에서 시작한 논의라서일까? 결국은 '개념의 재정의'를 통한 개개인의 각성과, 이를 바탕으로 지역 차원의 자생적 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움직임을 상당 부분 주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하여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너무나 착하고 이상적인 방법들이 아닐런지. 상당히 여러 번, 여러 명의 공동저자에 의해 '낡은 발전모델'과 대조적으로 긍정적인 언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도의 '간디'가 과연 이 시대의 '대안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간디의 풀뿌리 운동이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과 그 '전제'들을 간과하진 않았는지. 무엇보다, 영향력의 측면에서 '잘못된 발전 개념'이 세계에 급속히 전파된 것처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적인 개념'들을 또다른 상식처럼 전파되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영향력 전파'의 측면에서,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에는 개념에 대한 해체와 그 전개 과정이 별로 친근하지 않다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리면서 토론을 통해 이루어낸 결실이라고 하는데(각자 따로의 글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모종의 '통합'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 부럽다), 20년이 흐를 동안 좀 더 토의를 하여 더 쉬운 말로 소화하기 좋게 만들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책에 담긴 가치있는 주장을 널리 공유하는데 상당히 많은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가, 내용 그 자체가 허술한 것은 아니므로 다시 더한다..)

"제목만 보고" 막연히 자본주의를 통째로 비판하거나 '진보적'인 가치만을 내세우는 책이라고 속단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읽어보면 느낄 테지만 그런 판단 자체가 이미 '남의 말(개념)에 속박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세계화'나 '발전'에 관계되는 개념만 이런 식으로 보아야할까? 이 책의 핵심은 뭐뭐 '주의'나 저자들의 재정의된 생각조차 그저 괜찮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그 본질을 독립적으로 살펴보려는 자세 그 자체에 있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어, 무의식중에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선진국의 '복지'라는 것도 '사람답게 살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전문가와 관료의 오만하고 일방적인 인식(개념)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트루먼 대통령의 '저발전' 선언에 의해 개념이 속박되어버린 '발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인식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들은 일반적인 진보주의자와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즉, 남의 말에 의해 이미 일정한 틀로 속박당한 개념이라는 것. 따라서 '진보'라는 말의 의미조차도 13장에서 새롭게 고찰하고 있다. 이렇게 까다로울수가..ㅎㄷㄷ)

익숙한 개념들을 다시 '사전'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만큼이나 역시 만만치 않은 저자들, 그리고 내용들.
어쨌거나, 발전과 정의(Justice & Definition)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묵직한 책.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