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한 이들이 활개를 친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대한민국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포고령이 발표됐다. 한편의 코미디 같았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총을 든 계엄군이 등장했고, 요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서 맨몸으로 저항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계엄이 말이 되냐며 청문회에서 비웃던 장관이 동조했다. 그는 왜 스스로 비웃었던 계엄 사태의 공모자가 되었을까?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2021년 1월 6일, 말도 안 되게 많은 사람이 쿠데타 시도에 가담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 충격적인 사건에 감응하여 쓴 것"(10쪽)이라고 한다.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 대선 부정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연방의회의 조 바이든 당선인 인준을 방해하기 위해 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1,600여 명이 기소됐고 200명 이상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책에는 특정 인물(집단)이 범법 행위를 저지를 때 그들의 비위를 도운 공모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들이 어떤 과정이나 행위를 통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앞서 소개한 트럼프 사건을 포함해 나치,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위워크의 사례가 실려있다. 특히, 우리에게도 익숙한 컨설팅그룹 맥킨지의 두 얼굴은 놀라웠다. 맥킨지가 컨설팅을 제공한 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은 제안만 했을 뿐 선택은 컨설팅을 의뢰한 회사가 한 것이라며 발뺌을 하거나 서로 대립하는 두 회사의 이익을 위해 동시에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한국의 한 기업이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제발 윤리적인 컨설팅을 제공했기를 바란다.)
범죄가 일어나는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도 911에 전화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말리지 않는 등 범죄를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방관자라고 정의한다. 반면 조력자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범죄 사실을 알고도 조직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생존자를 돕거나 추후 동일 가해자가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조력자와 방관자는 성폭력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가담하지만, 두 유형 모두 행동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 사람들은 작위에 의한 위법행위보다 부작위에 의한 위법행위를 잘 처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_251쪽
저자는 특히 방관자의 부작위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다. 지난 12월 3일 밤, 그저 TV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달려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사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공모자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부작위로 공모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공모자들이 더 활개친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각인시켜주는 책이다. 이 두 가지를 주지하고 있다면 불의 앞에서 이전보다는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아무리 소수의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더라도, 뭐라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더 빨리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소수의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의심치 마라.
실제 세상을 바꿔 온 것은 바로 그들이다. _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