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언어, 한 세계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자유롭게 훨훨 유영하는 작가!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인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가 오랫동안 절판되어 있다가 개역 증보판으로 나왔다. 2011년 처음 출간된 초판본에는 1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개역 증보판에는 9편의 글이 추가되어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더욱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작가는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갔다. 1982년부터 현재까지 함부르크와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해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_48~49쪽
모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작가는 두 언어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한 세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파울 첼란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며 풀어쓴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는 작가처럼 이중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이야기다. 작가는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에서 한자 '門'이 부수로 들어간 문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독일어 텍스트와 연결시키는데, 일본어는 전혀 모르고 한자는 읽을 줄 아는 내가 보기에도 '門'을 찾아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작가는 단어 하나조차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데, 독일어 'Ich' 역시 그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다른데, 남자아이들은 '보쿠', 여자아이들은 '아타시'라고 지칭한다. 어른들은 성 중립적인 '와타시'를 쓸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소년이나 소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러나 독일어는 아주 간단하게 'Ich(나)'라고 말하면 된다.
만약 내가 ─ 예를 들어 독일어 같은 ─ 다른 언어를 말했다면 내 유년 시절은 얼마나 간단했을까. 나는 아주 간단하게 그냥 "이히(ich)"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히"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느낄 필요가 없었다. _233~234쪽
최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면서 한국에서도 다와다 요코의 작품들이 여럿 발표됐다. 다와다 요코처럼 한 곳, 한 언어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유영하며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진다는 기본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원본 텍스트가 보존되는 장소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_55쪽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_57쪽
다른 글자와 같이 살아가는, 외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과 노동자들도 이에 속한다. 이들의 눈에 도시의 모습은 수수께끼이거나 베일에 싸여 있다. _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