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바쁨은 관습적인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삶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기운 없고 진부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에게서 엄청난 에너지와 치열함, 가늠할 수 없는 불안을 본다. 휴대폰 알람과 생산성, 발전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쉬지도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본다." (16쪽)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나 자연 예찬론자가 하던 일을 일체 그만두고 숲으로 가라고 외치는 류의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필경사 바틀비에서 왔을 책의 마지막 문장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가 암시하듯 적극적인 "거부의 기술"에 가깝다. "깨어 있는 내내 일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여가 시간까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숫자로 수치화"되는 세상에서 관심경제에 저항하고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시간, 장소를 기억할 시간"에 관해 탐구한 책이다.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오델은 '연결성' 대신 '민감성'을 제안한다. 연결성이 "여러 개체 사이에서 정보가 빠르게 순환"(sns에서 비슷한 생각을 별생각 없이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것)하는 것이라면, 민감성은 "서로 다른 두 신체의 어렵고, 불편하고, 모호한 만남을 수반"하며 이 만남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감지하려는' 이 노력이 두 독립체를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모습이 되어 헤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또한 내게 입구와 출구가 전혀 다른 책이었다.)
너무 많은 말, 너무 많은 연결, 너무 많은 인정욕, 너무 많은 질투, 너무 많은 우울로 둘러싸여 있다는 자각이 해일처럼 나를 덮친 어느 날,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집어든 이 책은 무한히 밀려드는 외부 자극 속에서 온갖 방해물을 물리치고 내면을 갉아먹는 불안을 억누르면서 "진짜 현실"에 발딛는 일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과거에는 '진실'이 은폐되었다면, 지금은 '현실'이 사라져가고 있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우리의 관심과 욕망과 돈과 시간을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온라인 세계가 진짜 현실, 실제 세계를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눈앞에서 실제 세계가 무너져내리고 있는데 디지털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델은 트럼프 당선 이후(ㅋㅋ) 매일같이 집 근처 장미정원에 가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현실에 두 발을 딛기 위해서는 실제 땅이 필요했던 것이다. (...) 분명히 실재하는 땅이나 하늘을 주기적으로 접촉해야만 우리를 차지한 다차원의 세계에서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방향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구절구절 공감하며 읽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