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첫 문장부터 사로잡혔다. "한 시절 우리가 서 있던 자리의 한계 안에서" 읽던 책이 몇십 년 후에 다시 펼쳐진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책이 나를 읽는다. 이제 나는 기꺼이 리클라이너 의자에 몸을 파묻고 책이 내 무의식을, 무지와 위선과 수치심과 욕망과 두려움을 들추어내는 데 동의한다.
고닉을 좇아오는 동안 몇 번이나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점점 선명해지는 나의 페르소나. 글(논픽션)을 쓰는 사람에게만 페르소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무의식 저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웬만해서 들출 일 없는 부끄러운 됨됨이를 들여다볼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 쓰기에 관한 책을 쓰든(<상황과 이야기>), 타인을 집요하게 관찰한 글을 쓰든(<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엄마에 관해 이야기하든(<사나운 애착>), 문학작품 다시 읽기를 통해 나 다시 읽기를 시도하든(<끝나지 않은 일>) 고닉은 페르소나와 자신 사이에 놓인 심연 위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특히 이 책은 한 사람이 평생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경험할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롭고도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