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19 그들한테 시키기
책벌레수다 : ‘곁’과 ‘나·너’와 ‘우리’
우리가 쓰는 말에서 ‘그·그들’은 그저 “불러도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를 수수하게 나타냈다. 그런데 요 열 해 사이에 ‘그·그들’은 ‘놈·몹쓸놈·미운놈·부라퀴’를 가리키는 밉말(혐오표현)로 확 바뀌었다.
‘그·그들’이란, 아직 ‘이·이들’로 다가서지 않은 사이일 뿐이요, 남(그들)이 나한테 다가설 노릇이 아니라, 내가 너(그들)한테 다가설 노릇이다. 이러면서 서로(나랑 너)가 나란히 다가설 노릇이요, 둘(나랑 너)이 나란히 다가설 때에 비로소 ‘우리’라는 이름을 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우리’라는 낱말을 널리 쓴다고 여긴다. 다만, 우리나라는 조금 유난해 보일는지 모르나, 모름지기 모든 곳·나라·겨레가 ‘우리’를 으레 쓴다. 그저 우리나라는 ‘하늘겨레’라는 뿌리가 있어서 ‘하늘’을 가리키는 숱한 낱말 가운데 하나인 ‘우리’를 익히 쓴다.
요샛말(최근 표준어)로는 ‘하늘’이되, 고작 쉰 해나 일흔 해나 온 해 앞서만 해도 ‘하 + ㄴ + ㆍ + ㄹ’인 얼개이다. ‘하날’인 셈이고, 여러 고을과 뭇사람은 ‘한울’이라는 낱말을 즐겨쓴다. ‘하늘 = 한울’이요, ‘하·한’은 ‘크다·많다’를 나타내는데, ‘하·한’은 “셀 길이 없도록 그저 크고 많다”라는 속뜻이다. 그렇기에 ‘한길·한참·한껏·한가람·한새·한소·한창’ 같은 낱말이 있고, 받침을 바꾸어 ‘함·함께’로도 쓴다.
곧 ‘하늘 = 가없이 크고 너른 울’이요, ‘울’은 ‘우리’를 줄인 낱말이라서 ‘하늘 = 큰우리·너른우리·하나우리·함께우리’인 얼개이다. 우리가 ‘우리’라는 낱말을 쓸 적에는, 나랑 네가 똑같고 나란히 언제나 ‘하늘’을 ‘아우르’듯 크고 넓고 깊다는 마음을 그린다.
그렇다면 왜 기껏 열 해 사이에 ‘그·그들’ 쓰임새가 확 뒤바뀌면서 ‘극좌·극우’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까? 우리 스스로 ‘우리’인 줄 잊어야, 나라(국가·정부·사회)가 우리를 ‘종(노예)’으로 부리기 수월하다. 나랑 너를 아우르는 하늘빛이라는 속뜻인 ‘우리’라는 낱말을 안 쓰면서 ‘나(나의·my·ego)’라는 틀에 가두어야, 나하고 너를 잇는 바람빛을 잊고 잃는다. 이래야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종살이(노예사회)로 억눌러서 사람을 길들이려고 하는 나라이기에, 사람들이 스스로 갈라치기를 하면서 끝없이 불타오르고 싸우고 죽이기를 바란다.
사람들 스스로 ‘너나들이’라는 ‘우리’라는 숨빛을 잊어야, 지쳐서 죽을 때까지 싸우느라 ‘생각하기를 멈춘’다. 싸울 적에는 앞뒤를 안 가리니까 ‘생각’을 안 한다. 생각을 안 하니까,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 서로 ‘그놈들’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극좌’라느니 ‘극우’라느니 놀리고 비아냥대로 윽박지르고 주먹을 흔들면서 노려본다. 서로서로 ‘나(나의·my·ego)’만 옳다고 외친다.
‘우리’라는 이름을 잊기에 하늘과 바람을 잊는다. 땅과 바다를 잃는다. 들숲메를 나란히 잃는다. 이러면서 서울이라는 수렁에 스스로 갇힌다. ‘우리’를 바라볼 때에는 늘 “나는 누구일까? 내가 보는 너는 누구이지?” 같은 말을 끝없이 되물으면서 스스로 눈뜨는 길을 가려고 스스로 배운다. 잘 보면 누구나 쉽게 알 텐데, 사람들 스스로 서로 갈라치기를 하면서 ‘쌈박질(극좌·극우 편가르기 전쟁)’을 벌일 적에는 어느 누구도 안 읽고 안 쓰고 안 익히고 이야기조차 없다.
“나만 옳으”니까 그저 목소리만 높인다. ‘높이는 목소리’조차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모른다. 나라가 뒤에서 글바치(지식인·엘리트)를 시켜서 살살 지피는 속임말을 그대로 따르면서 목소리만 높이느라, 마음도 생각도 삶도 살림도 사랑도 없이 쳇바퀴를 한다.
예부터 배우는 사람은 “모든 책 읽기”를 했다. 왼놈이 쓴 책이라 안 읽는다든지, 오른놈이 쓴 책이라 불태운다든지, 가운놈이 쓴 책이라 팽개친다면, ‘배움길’이 아니라 ‘종살이(국가권력 복종‥제국주의와 군사독재 부역)’로 치닫는 셈이다.
누구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읽어?” 하고 말할 까닭이 없다. 그저 읽으면 된다. 그저 차근차근 읽으려고 하면 어느새 “모든 책 읽기”라는 삶길을 걷는 줄 알아챈다. 배움터는 온갈래를 고루 배우는 터전이다. 왼갈래나 오른갈래만 가르친다면 배움터가 아니다. 온길을 짚으면서 온살림을 익힐 터전으로 삼을 배움터이다. 이리하여, “그들(그놈)만 읽고 배워야” 하지 않지. “우리부터 읽고 배워야” 한다. 아니, 나부터 읽고 배우면 되고, 너도 함께 읽고 배우면 된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읽고 같이 배우고 즐겁게 살림짓기를 노래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모든 책을 차근차근 읽어내어 모든 빛을 아우르는 ‘하늘숨’을 마시는 하루를 살아내어 살림하는 사랑에 눈뜨는 길을 걸을 노릇이다.
그들한테 시킬 까닭이 없다. 그들이 밉말(혐오표현)을 쓴대서 그들을 손가락질한다면, ‘손가락질’도 똑같이 밉말이다. ‘그들’이 아닌 ‘옆’에서 누가 밉말을 하든 말든, 나랑 너랑 우리는 살림말과 숲말과 푸른말과 사랑말과 사람말을 헤아려서 펴면 된다. ‘그들’도 듣고, “말을 하는 나부터 넋이 늘 들을” 아름말을 즐겁게 펴면 된다. 먼발치 그들이나 놈팡이가 아닌, 나랑 네가 서로 다가서서 이루는 ‘곁’을 이룰 노릇이다.
‘나·너’는 보는 자리만 다르다. ‘우리’는 나란히 보는 자리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어울리’는 사이에 ‘아우르’는 틈을 열기에 ‘우리’이다. 함께 웃고 같이 울면서 나란히 이야기하는 오늘을 지낸대서 ‘우리’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에 웃고 운다. 너는 나를 마주하기에 울고 웃는다. ‘너나들이’라는 오래말이 왜 있는지 헤아려 보자. 너하고 나 사이에 바람길을 내어 하늘빛이 파랗게 스며들기에, 싹틔우고 눈뜨는 오늘 이곳에서 사랑이라는 씨앗이 깨어날 수 있다. 작은 씨앗 한 톨을 깨우는 길잡이말 한 마디가 바로 ‘우리’이다.
ㅍㄹㄴ
고향 친구와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사기를 쳐서 살거나 빌어먹더라도 도시가 낫다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으모 세상이 우찌 돌아가겠노. 그라고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우찌 살겠노.” 《농부시인의 행복론》 37쪽
“고양이 세계 정복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뭐? 엄마, 자고 있는 코유키를 보고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3》 49쪽
“사미? 표정이 그게 뭐야?” “어디 있든 별로 상관없잖아요.” “상관있어! 걱정되니까.” “저어, 저희 집이요. 저희 집에 있었어요.” 《우리 집 꼬마 아가씨 3》 20쪽
서울에서 나고자란 또래 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서울 하늘 역시 별을 볼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60쪽
‘언젠가 분명 너에게도 사투르노가 알려줄 거야. 이 세계는 넓고 언제나 바람이 불어서 아름답다는걸. 나 역시 그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걸.’ … ‘좀더 빨리 말할걸 그랬어. 내 어깨에도 와주면 좋겠다고.’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5》 71∼73, 143쪽
《농부시인의 행복론》(서정홍, 녹색평론사, 2010.6.22.)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3》(호시노 나츠미/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4.5.15.)
#キジトラ猫の小梅さん #ほしのなつみ #ねこぱんちコミックス
《우리 집 꼬마 아가씨 3》(산카쿠헤드/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6.5.25.)
#ぼくの魔なむすめ #サンカクヘッド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최원형, 샘터, 2016.12.5.)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5》(이와모토 나오/이해빈 옮김, 소미미디어, 2026.4.25.)
#岩本ナオ #マロニエ王國の七人の騎士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