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파릇파릇



  사흘은 작은아이랑 큰아이가 등허리를 눌러주었다. 어제는 곁님이 눌러주었다. 나흘 동안 손길을 받으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우리는 지난 나흘을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는 마음을 다시 짚었다. 곰곰이 보면 여태 살아낸 모든 나날은 늘 이곳과 이때를 새롭게 짚는 길이다. 온하루와 온때를 스스로 새롭게 가다듬기에 파란숨을 쉬면서 파란하늘과 나랑 너랑 느루 나란한 줄 알이볼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은 일본이 총칼로 헤집던 때부터 퍼졌다. 박정희 무렵에 날뛰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때에도 서슬퍼렇게 으스스했다. 이동안 들사람은 ‘몸뒤짐(불심검문)’에 내도록 시달렸다. 그러나 이 모든 굴레살이에서도 ‘낯선남(낯선 남인 너)’이 아닌 ‘이웃너(이웃으로 만나는 너)’로 마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제 우리는 모든 총칼잡이는 걷어냈는데, 막상 아직도 ‘낯선놈(낯선 남보다 싫은 너라는 놈)’을 두려어하면서 멀리해야 한다는 틀에 사로잡힌다.


  숨결은 파릇파릇 오른다. 풀꽃나무는 푸릇푸릇 오른다. 하늘은 파랗게 일렁인다. 들녘은 푸르게 일렁인다. 자귀꽃을 만난 지 보름쯤 흐른다. 어제 큰아이도 드디어 밀잠자리를 알아보았다. 두 아이는 ‘잠자리 날갯짓’을 알아보면서 꽁무니를 좇는 눈길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밀잠자리 한 마리가 우리 곁에서 ‘제자리날기’를 한동안 선보여 주었다.


  나는 파랗게 춤춘다. 너는 푸르게 춤춘다. 우리는 한 하늘을 함께 마시면서 나란히 걷는다. 아니, 나는 늘 걷는다만, 너는 안 걸을 수 있어. 넌 가깝거나 멀거나 노상 달구지(자동차)를 몰 수 있어. 달구지로 움직이느라 하늘과 들과 바다를 못 보거나 안 볼 수 있어. 밤꽃이 하얗고 달개비꽃이 파란 여름날을 안 보거나 못 보면서 그저 덥다고 푸념할는지 몰라. 땀흘려 걷다가 문득 부는 바람에 온땀이 훅 식는 줄 아예 모를 수 있어. 여름 어귀에 어미새가 새끼새를 어떻게 돌보면서 날갯짓과 사냥을 물려주는지 하나도 모를 수 있어.


  아직 몰라도 돼. 이제부터 알아가면 돼. 앞으로도 한참 몰라도 돼. 오늘부터 느긋이 천천히 가만히 하나씩 조금조금 가볍게 익히면 돼. 그러니까, 좀 걷자. 날마다 10km쯤, 아니 하루에 20km쯤, 일하고 놀며 느긋이 걷고 읽자. ‘운동’을 하려고 걷지는 말자. ‘노는’ 마음으로 걷자. 노는 마음으로 거닐면서 콧노래를 부르자. 너무 크게 노래하면 둘레(남·놈)에서 “저놈 미쳤나?” 하고 싫어할 수 있겠지. 목소리는 나즈막이 부드러이 사근사근 입술노래를 부르면서 걷자. 이렇게 걷는 손에는 책 한 자락을 쥐자. 걷다가 건널목에서 멈출 적에 읽자. 걷다가 나무그늘을 만나면, 나무 곁에 서서 읽자. 그러면 돼. 이렇게 하면 돼. 함께 거닐고 노래하고 웃고 나무랑 사귀고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면서 여름날을 기뻐하면 돼. 2026.6.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