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투표 법 시골 할매 밭일
열흘 앞서 마을 할매네 마늘밭 일손을 도왔다. 할매는 곤드레밭 일손도 도와주기를 바라셨고, 그러마 했다. 할매가 얘기한 날 05시에 곤드레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한참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 할매가 힘들어서 쉰다고 여겼다. 엊저녁에 할매가 전화했다. “어이, 작가네인가? 공(고흥)에 있나? 공에 있어? 그라믄 낼 새벽에 밭에 좀 나올 수 있는가? 잉, 새벽 다섯 시에 나와 주면 고맙지. 우린 네 시에 나와서 먼저 빌 텡게. 어이, 그라믄 낼 봅세.”
밤새와 낮새가 갈마드는 무렵이 03∼05시이다. 밤새는 얼추 이무렵에 쉬러 떠나고, 낮새는 거의 이무렵부터 일어나서 노래한다. 멧밭(산밭)으로 걸어가며 새소리를 듣는다. 늦봄 끝자락이기에 04시도 05시도 환하다. 할매 여섯 분이 먼저 ‘비’ 놓은 곤드레를 자루에 쏟아서 천천히 여민다. 곤드레자루가 하나둘 열스물 쌓이고 난 뒤에는 수레를 밀어서 큰자루(15∼20kg)를 길가로 옮겨서 쌓는다.
지난해에는 곤드레밭 일손을 도울 적에 05∼08:30이면 마쳤는데, 올해에는 꽤 더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매가 곤드레를 베고서 큰바구니에 척척 쌓은 뒤에 자루에 쏟으셨다면, 올해에는 내가 큰바구니를 날라서 자루에 쏟은 다음에 빈바구니를 할매 옆으로 갖다놓는다. 이렇게 하는 틈틈이 곤드레자루를 단단히 여미고, 여민 자루를 수레에 싣고서 길가로 옮기는데, 할매들 낫질이 나보다 훨씬 느리다.
무엇보다도 할매는 쉴참을 못 낸다. 아침해가 일찍 뜨는 첫여름 어귀이다 보니, 할매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아구야, 심들어 죽갓소. 숨도 못 쉬겠네.” 하시면서도 낫을 못 놓는다. 안 되겠구나 싶어서 물병을 들고서 할매 곁에 쪼그려앉는다. “할머님, 낫 좀 놓고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숨을 돌리셔요.”
여든 언저리이거나 아흔 가까운 나이인 할매들은 여태 ‘쉬잖고’ 일만 해왔다. 일손을 잡을 적에는 참을 낸다는 마음조차 없이 몸을 부린다. 문득 돌아본다. 할배라면 막걸리나 ‘쐬주’를 걸친다면서 꼭 참을 내는데, 할매는 어느 분조차 1분쯤 쉬는 참조차 스스로 못 낸다. “순이한테 일만 시키며 부린 굴레(가부장제)”가 뼛속 깊이 스몄을 테니, 이제 와서 씻거나 내려놓기는 어려울 만하겠구나 싶다. 할매들은 몸이 고되어 물병 있는 데로 오갈 기운이 없기도 하시지만, 내가 물병을 들고서 한 분씩 물을 떠서 드릴 때까지 “목타서 죽는 줄 알았소!” 같은 말조차 못 하셨다. 그저 “어떻게 작가양반은 우리가 목타서 죽는 줄 알고서 물도 다 갖다 주쇼잉? 고맙구마!” 하실 뿐이다.
거의 해마다 마을 곤드레밭 일손을 도왔다. 참말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침 08∼08:30이면 다 끝났고, 할매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가셨으나, 올해에는 10:00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마쳤고, 나는 온갖 일손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더 많이 맡았다. 그런데 할매들은 “아따 09시 버스로 선거 하러 갈랑캤는데 못 가것네. 다음 버스가 언제 있다야?” 하신다.
나는 오늘 뽑기를 하러 갈 수 있을까? 어제 읍내에 갔더니 도무지 뽑기를 할 수 없이 먼 곳 하나만 열려서 못 했다. 오늘 뽑기를 하러 못 가면 제때뽑기(본투표)는 못 한다. 첫여름 사흗날(6.3.)은 쉼날(공휴일)인 터라 시골버스가 안 다니니, 면소재지에 나갈 수 없다. 마을 할매들도 이 대목을 알기에 오늘 꼭 미리뽑기(사전투표)를 하러 가려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숨돌리고, 등허리를 펴고, 손끝과 발끝에 밴 흙을 조금 빼다가, 나라지기가 남긴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박근혜·윤석열·이명박이든 이재명·문재인·노무현이든,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함부로 했구나 싶다.
이 대통령 “투표 포기, 공동체 해치는 그들 편드는 것”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347145
시골사람은 뽑기를 하러 가기 힘들다. 서울·큰고장이라면 “걸어서 오갈 만한 곳”에 뽑기터(투표소)가 있지만, 시골은 면소재지나 읍내에만 있는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둔 뽑기터는 마을사람이 걸어가기에는 먼 데에만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을 할매할배가 시골버스를 타고서 면소재지나 읍내 버스나루에 내려서 걸어가기에 먼” 곳이면서, 종이를 내고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면 시골버스를 한두 시간을 멀뚱멀뚱 기다리고서 또 먼길을 걸어야 한다.
시골사람은 우리나라에서 1%도 안 되는 줄 안다. 그나마 이 1% 가운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사는 사람은 그냥 걸어가서 종이를 내기도 하지만, 요새 웬만한 분들은 달구지(자동차)를 몰더라. 이와 달리 시골 할매할배는 달구지를 못 몰거나 안 몰기도 하지만, 지팡이조차 못 쓰고서 아기수레를 천천히 밀면서 “10m를 1분에 걸쳐서 기듯 걷는”데, 이분들은 ‘투표 포기’라기보다는 ‘투표권을 나라에서 빼앗은’ 셈이다. 시골에서는 뽑기날에 따로 ‘버스를 마을마다 대어서 할매할배를 태우며 다녀’야 맞다. ‘투표 포기’를 안 하고서 ‘투표권 지키기’를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노릇 아닌가?
또한 “누구를 찍는 몫”만 ‘투표권’이지 않다. “찍을 만한 놈이 보이지 않을 적에는, 어느 누구도 안 찍는 몫”도 ‘투표권’이다. 어느 누구도 안 찍는 사람들은 “이놈도 저놈도 그놈도 모두 한통속”이라고 느낀다고 “말없이 말하는 몸짓”이다. 이른바 ‘손사래(기권)’도 “한 표 행사”이다. 손사래를 할 몫으로 말없이 말하려는 사람도 적잖게 마련인데, 나라지기가 손사래를 하는 사람을 싸잡는 말을 함부로 한다면, 이 나라는 앞날이 캄캄하다. 손사래를 하는 사람들 앞에 무릎꿇으면서 “앞으로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나라일을 고르게 아름답게 착하게 하겠습니다!” 하고 뉘우쳐야 할 일이다. 2026.5.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