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버스멀미
서울이나 큰고장으로 바깥일을 하러 다녀올 적에는 길손집에서 묵는다. 어제 동작구 여러 길손집 가운데 47000원 하는 곳에 묵는데 밤새 못 잤다. 누우면 어디서든 잘 자는 몸인데 어제는 꿈길로 못 가더라. 꽤 좁기도 했지만, 바닥에 뭘 바르거나 흘렸는지 미끄럽고 냄새가 짙어서 끙끙댔다. 안 되겠구나 싶기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다가 일어나서 바닥닦이를 했다. 바닦을 닦으니 냄새가 조금은 가신다.
이 길손집과 가까이 있는 넓고 깨끗한 곳은 하루 90000원이다. 43000원 벌어지는 값이면 책이 몇 자락이냐 싶어 싼곳에 깃들었는데, 아침에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모처럼 멀미를 했다. 버스에서 잠들지도 글쓰지도 못하다니. 버스에서 눈을 감아도 어지럽고, 책을 쥐어도 눈에 힘을 꽉 주어야 하고, 고흥읍에 닿기 앞서 비로소 노래 한 자락을 썼다.
43000원을 아낀다고 하다가 된통 애먹은 셈이다. 기쁘게 43000원쯤 쓰고서 푹 잤다면 시외버스에서 신나게 읽고 썼을 테지. 43000원으로 장만할 책이 여럿이더라도 사흘쯤 책을 굶는다고 여기면 되는데, 책값을 어림하는 버릇을 아직 떼지 못 했다. 혼자 묵는 길손집이 아닌, 아이를 데리고 움직였다면 47000원 집이 아닌 90000원 집에 갔으리라.
09:30∼14:07 사이에 멀미를 참으며 책을 석 자락 읽어냈다. 속이 울렁거리지만 고흥읍에 내려서 낯을 씻고서 숨돌린다. 집으로 돌아갈 14:40 시골버스를 기다리다가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고흥읍 버스나루 처마에 제비 둘이 둥지를 새로 짓는다. 헐리고 다시 헐려도 씩씩하게 날갯짓이다. 제비야, 넌 늘 사람을 가르치는구나. 네 날갯짓과 노랫가락을 앞으로 누구나 널리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기를 바라. 너는 오롯이 사랑으로 둥지틀기를 하면서 새길을 그리기에 이토록 의젓하겠지.
나도 곧 우리집으로 간다. 뭇새가 함께살고, 사마귀알집이 톡 터질 앵두나무가 있는, 나무숲 이룬 보금자리로 간다. 개구리도 노래로 반길 숲집으로 돌아간다. 돌나물과 멧딸기가 싱그럽고, 잠자리도 같이사는 푸른집으로 간다. 책으로 묵직한 등짐을 시골버스에 싣는다. 시골버스에서 오늘 넉 자락째 책을 쥔다. 시골길 15km를 달리는 동안 74쪽을 읽는다. 이제 내리자. 2026.5.2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