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놀러가는 너
나는 집안일과 집밖일을 나란히 한다. 두 일을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저 두 일을 함께 맡는다. 여태 모든 일을 언제 어디에서나 기꺼이 맡았다. 어린배움터를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쓸고닦기(청소)’를 빼먹은 날이 하루조차 없고, 넓고 큰 짐승집(사육장)조차 동무하고 둘이서 내내 쓸고닦았다. 누가 짐이 무거우면 어린이 주제에 도맡거나 나눠들고, 어머니가 저잣마실을 가면 꼬박꼬박 짐꾼으로 따라나섰다. 싸움터(군대)에서 터무니없는 심부름을 시켜도 그저 맡았다. 싸움터에서는 윗내기(상관)가 시키면 “네! 알아서 죽겠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다 해내야 했다. 200들이 기름통을 벼랑길에서 아찔아찔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혼자 굴려서 나르고, 멧길걷기(천리행군)를 하다가 쓰러진 뒷내기나 누가 있으면, 쓰러진 사람이 남긴 짐까지 어깨에 걸쳐서 끝까지 날랐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작은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두 아이를 돌보면서 함께 노는 몫을 즐겁게 맡았다. 천기저귀를 대면서 날마다 빨래바람이요, 모든 빨래를 손발로 했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면서 달래고 자장노래와 놀이노래를 들려주었다. 밥을 짓고 비질과 걸레질을 하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하루를 오롯이 살면서 틈을 내어 ‘낱말책짓기(사전편찬)’를 했다. 일손이 바쁠 적에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서 노래를 부르며 글일을 여몄다. 두 아이를 두바퀴(자전거)에 태워서 고흥 모든 곳을 다녔다. 멧자락도 오르고 바닷가를 달리고 들녘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다가 잠들면 두 어깨에 한 아이씩 안고서 걸었다.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는 나날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일하셨고,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와 같이 일했을 테지. 사내(아버지) 가운데 두 일을 도맡는 사람이 드물 뿐, 누구라도 할 만한 일이다.
언제나 아이곁에서 지내는 하루란,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한테 사랑을 속삭이는 길을 익히는 꿈빛이라고 느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스스로 몸씻기를 해내려고 할 적에는 살짝 섭섭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씻고 나면 늘 목이나 팔뚝이나 등이나 곳곳에 땟자국이 고스란하다. 잘 비비고 문지르고 벗겨 주고 싶지만 꾹 참았다. 스스로 머리를 감는다고 용쓰지만 부스스하거나 먼지를 떨구지 못 한 모습을 보고도 말없이 지나갔다.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스스로 알아채면서 즐겁게 해낼 테니까.
어느 해부터 쇠날(금요일)이 몹시 붐빈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도, 서울일을 마치고서 시골집으로 돌아갈 적에도, 쇠날 + 흙날은 그야말로 온나라 길바닥이 미친듯이 붐빈다. 살림하고 일하는 사람은 날짜(요일)를 안 따진다. 다녀야 하니 다닐 뿐이고, 일해야 하니 일할 뿐이다. 어쩌다가 쇠날하고 흙날이 겹치거나 끼면, 길손채를 잡느라 애먹고, 탈거리(버스·전철) 어디서나 빼곡빼곡 바다를 이룬다.
삼성전자 일꾼이 꽃돈(상여금)을 뱉어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지. 일하는 사람은 일삯을 받을 몫이 있으며, 목소리를 내려고 머리띠를 두를 몫이 있다. 그러면 일꾼은 어느 만큼 일삯을 받으면서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제는 ‘목소리’만 높일 때가 아니다. 이제는 ‘함께’라는 길을 볼 때이다. 지난날에는 어린배움터에서조차 길잡이가 아이들 뺨따귀를 순이돌이를 안 가리면서 갈겼다. 사내도 가시내도 길잡이 주먹질과 발길질에 피멍이 들 뿐 아니라, 피가 철철 흘렀다. 푸른배움터 길잡이는 아주 주먹꾼(권투선수)마냥 얼굴을 마구마구 두들겨패면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는 돈자루(촌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지난날 “주먹잡이 길잡이(폭력교사)”는 멀쩡히 꽃돈(연금)을 넉넉히 받으며 탱자탱자 보낸다. 이러다가 요즈막에는 배움터가 뒤집혔다. 아무 곳에나 ‘아동학대’란 이름을 들먹이면서 아이들이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히기 일쑤이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힐 적에는 종이(학적부)에 안 남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이다.
일몫(노동권)을 어떻게 펴고 나누어야 슬기로운 나라요 터전일는지 헤아려야 할 때이다. 배움몫(교육권)을 어떻게 베풀고 추슬러야 어진 나라요 터전일는지 살펴야 할 때이다. 옳은목소리(정의로운 주의주장)로는 쌈박질만 하다가 다같이 죽는다. 옳은목소리가 아닌 ‘함께’라는 길, 곧 ‘함께살기·함께살림·함께꽃’을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2026.5.1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