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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싫좋



  아침에 집을 나서기 앞서 작은아이랑 얘기한다. 요새 뒷집이며 마을앞이며 곳곳에서 쇳소리가 넘친다. 헌집을 헐고서 새집을 크게 올린다며 시끄럽고 먼지가 수북하다. 틀림없이 시끌소리에 매캐먼지이다. 시끄럽다고 여기며 싫어하면 도리어 귀를 쫑긋거리면서 미움씨를 심는다. “응, 저기서는 시끌삶을 지어서 누리는구나” 하고 느낀 다음에,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하면서 즐거울는지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새 시끌먼지는 슥 스쳐서 사라진다.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서 온몸으로 지을 하루를 그리면, 서울 한복판에서 작은새·큰새·나비·잠자리·벌·개미·거미·풀벌레처럼 푸릇한 이웃을 알아본다. 온마음을 딴청에 쏟기에 짜증스럽고 싫고 밉게 마련이다. 온마음을 쏟는 곳에 바로 ‘나’라는 숨결이 있다.


  누가 책을 읽는가. 책벌레는 시끌소리를 느끼는가. 누가 책을 쓰는가. 책벌레는 책이 아닌 시끌소리를 왜 느끼는가. 마을앞에서 시골버스만 타도 ‘시골버스가 내는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럽다. 시골버스를 타는 아재나 할배나 아지매나 할매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나 어린이나 푸름이가 손전화를 켜서 쳐다보는 그림도 하나같이 시끄럽다. 고흥읍에 닿아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훨씬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시골버스이든 시외버스이든, 또 서울에 내려서 갈아타는 시내버스이건 ‘시끌소리가 싫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시끄럽건 말건 내가 볼 곳”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종이에 글을 쓰거나 책을 펴서 읽을 수 있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하루를 그리고 짓고 돌보고 누리고 나누려 하기에, 온돈을 들여서 기쁘게 책을 사읽는다. 온사랑을 담아서 쓴 글을 알아보려고 온눈을 뜨기에 우리 스스로 밝고 즐겁다. 책벌레는 책소리를 듣는 책길이다. 잎벌레는 잎소리를 듣는 잎길이다. 나는 날개돋이를 그리는 작은벌레로 살아간다. 나는 돈그루(주식)가 아닌 나무그루(숲)를 그리며 바라본다. 나무가 서는 밑동인 그루가 뿌리랑 줄기를 나란히 담듯, 살림을 담는 그릇은 늘 밑바닥이라는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듯, 사랑을 짓는 살림집을 그려서 들려주려는 “그루이자 그릇이자 그림인 글” 한 자락을 길이길이 실오라기마냥 풀어내는 오늘길을 걷는다.


  작은아이한테 속삭인다. “좋아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얼핏 좋아 보이겠지? 그런데 좋아한다는 좋은 일만 하려는 사람은 이내 지겨워한단다. 싫어하니까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은,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다 안 하려 하면서 스스로 갉아. 그래서 뭘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똑같아. 둘 다 날마다 싸우면서 불타느라 스스로 죽어가. 이와 달리, ‘그저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맞이하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만 본단다. ‘어떻게’와 ‘하다’를 생각하기에 늘 스스로 길을 열어. 하루를 그리며 일하는 사람은 싫거나 좋다고 가리지 않으면서 다 배우려고 하지. 그렇지만 싫거나 좋은지 따지려는 사람은 이미 아무것도 안 배우려고 하니까 스스로 단단히 닫아걸어서 그만 고이고 썩어간단다.”


  싫어하는 사람은 시시하고 시들시들 말라비틀어간다. 좋아하는 사람은 졸졸졸 꽁무니를 좇느라 종살이에 조무래기로 구르니 어느새 좁아터진다. 누가 읽고 쓰는가. 싫다고 외치거나 좋다고 따르는 무리는 여태 책을 안 읽었다. 싫다며 등돌리는 무리는 늘 ‘읽는흉내’였다. 좋다고 모시거나 높이는 무리는 내내 ‘읽는척’이었다. 오직 구슬땀·이슬땀·노래땀·손땀·살림땀·푸른땀으로 일하는 사람만 ‘읽기’와 ‘쓰기’와 ‘나누기’와 ‘베풀기’를 했다.


  어느 쪽에 선들 대수롭지 않다. ‘읽는이(독서자)’일 적에 비로소 이야기가 흐른다. 어느 쪽에 선들 대단하지 않다. ‘안읽는이(비독서자)’일 적에는 아무 이야기가 없어서 서로 아무 마음이 안 흐른다. ‘안읽는이’일수록 목소리만 높다. ‘읽는이’일수록 먼저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을 갈무리하고는 나즈막이 마음을 들려준다. ‘읽는이’는 으레 “먼저 듣기 + 나중에 말하기 + 다시 듣기 + 새로 말하기”라는 길을 잇는다. ‘안읽는이’는 그야말로 “혼자 말하기 + 말 끊기 + 또 혼자 말하기 + 다시 말 끊기”를 되풀이한다.


  누구나 읽고 쓰되, 아무나 읽고 쓰지 않는다. 언제나 읽고 쓰되, 아무렇게나 읽고 쓰지 않는다. 나는 읽고 쓰고 나누고 펴려는 하루그림이다. 그래서 숲부터 읽고 쓴다. 바람과 바다를 나란히 읽고 쓴다. 너도 나랑 같이 숲과 바람과 바다를 읽고 쓰고 나누면서 노래하기를 바라. 이제 흉내도 시늉도 척도 집어치우자. 늘 스스로 사랑하며 살림하자. 2026.5.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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