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11 오늘은 뭘 배울까
책벌레수다 : 야금야금 잎을 갉는 애벌레
언제나 때에 맞게 만나고 헤어진다. 우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좋은이·나쁜이’가 아닌 “그저 그때에 만나서 어울리면서 함께 배우는 사이”라고 느낀다. 날마다 숱한 사람이 태어나고 사라지는데, 우리는 이 숱한 사람 사이에서 ‘나·너’라는 길을 마주하는 마음을 가만히 느끼고 받아들여서 하루를 짓는구나 싶다. 어쩜 저런 짓을 일삼느냐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저런 짓’을 느끼고 겪고 배워야 하기에 ‘저런 사람’을 스치거나 만난다. 저런 사람은 나쁘지 않다. “그러면 넌 저런 때에 어떤 사람으로 어떤 모습으로 서겠니?” 하고 묻고 들려주며 보여주는 길잡이라고 느낀다. 저런 짓을 일삼는 저런 사람을 나무라거나 탓하기도 할 수 있되, 우리 스스로 ‘저곳’에 설 적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지을는지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서로 만나거나 스치거나 마주치는 셈이다.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어디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생활이 편리해져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료비 지출이 늘고 건강기구를 사는 등 결국 돈도 시간도 오히려 소모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거죠. 《궁극의 미니멀라이프》 48쪽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이를 안고 업고 돌보며 늘 쪽종이를 펼쳐서 쪽글을 쓰며 지냈다. 남눈치를 볼 까닭이 없거든. 그림이든 글이든 무엇이든 매한가지라고 느낀다. 아이가 어버이를 지켜보면서 “우리 엄마아빠는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느끼면 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남눈치’가 아니라 ‘아이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살면 느긋하다.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는 붓을 쥐고서 글을 끄적이면 얼핏 힘들다고 여길는지 모르는데, 힘들 까닭이 없이 두 손으로 두 일을 마주하는 하루라서 즐겁게 마련이다. 어버이로서 이렇게 두 손으로 두 일을 하면, 아이는 문득 “나도 붓 좀 줘. 나도 쓸게.” 하고 바란다. 이때에 종이랑 붓을 선선히 내주고서 다른 종이랑 붓을 꺼내면, 아이는 차분하면서 조용히 글놀이나 그림놀이로 스며든다. 아이더러 “열린터(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해.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안 뛰어.” 하고 나무라거나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 아이하고 누리거나 놀거나 즐길 살림거리를 챙겨서 다니면 된다.
독재자의 개선문은 먼지로 허물어져 버렸다네. 그 돌들로 아이들은 소꿉놀이용 작은 오두막을 지었네.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27쪽
애벌레는 날마다 잎을 갉는다. 갉고 갉고 또 갉고 다시 갉고 새로 갉는다. 애벌레는 잎갉이로 온삶을 보내는 듯하지만, 눈코귀 없이 입 하나만으로 잎갉이를 하면서 허물벗기를 한다. 또 하고 자꾸 하고 새로 한다. 책벌레는 애벌레마냥 그저 읽고 다시 읽고 새로 읽는 동안 천천히 허물벗기를 하며 배우는 길이다. 언제 날개돋이를 할는지 몰라도, 참말로 날개돋이를 해낼는지 몰라도, 새삼스레 다시 일어나는 새벽에 잎을 갉으면서 풀똥을 누고, 또 잎을 갉아먹고서 풀똥을 눈다.
“이길 만하니까 이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람을 베는 세월이 필요한 거야. 그 경지까지 이르면,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긴 거라면, 어라? 그때는, 싸우는 것 자체가 필요할까?” 《배가본드 21》 99쪽
아기는 어버이 품에 안겨서 젖을 문다. 아기는 젖을 먹고서 똥을 누고, 또 젖을 먹고서 똥을 눈다. 내도록 업히고 안기며 젖먹이로 지내다가 문득 웃고, 트림을 하고, 눈을 깜빡이고, 귀를 쫑긋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잼잼을 한다.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고, 이제 목을 가눌 줄 알면 어느새 다다다닥 달리듯 기어다닌다. 아기가 하루아침에 서거나 달리지 않듯, 아기가 하루아침에 말을 떼지 않듯, 책벌레는 애벌레를 닮고 아기를 닮은 터라, 늘 읽고 또 읽고 또또 읽고 또또또 읽는다. 지치지 않고서 읽는다. 아니, 지치도록 읽는데, 지쳐서 나가떨어져도 또다시 읽는다. 무엇을 배우려는 책읽기인지 몰라도 마냥 읽는다. 이러다가 고단해서 폭 곯아떨어지면 꿈길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고치를 틀 날을 맞이한다. 애벌레가 고치를 튼다면, 책벌레는 글을 쓴다. 애벌레가 고치를 틀어 꿈을 헤매다가 날개를 단 몸으로 피어나면서 밖으로 나오듯, 책벌레는 어느새 글벌레로 거듭나더니 책 한 자락을 내놓고서 활짝 어깨를 편다.
“그 말뜻은 같은 병의 환자라고 해도 한 명 한 명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법이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저희 아버지께 가장 적절한 치료법은 빨리 퇴원시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아버지의 병의 뿌리는 아주 깊어요. 이번이 아버지의 맘속에 있는 아주 나쁜 병을 치료할 아주 좋은 기회예요.” 《Dr.코토 진료소 2》 158, 159쪽
대단하거나 훌륭하다 싶은 책만 읽지 않는다. 대단하거나 훌륭하다 싶은 글만 쓰지 않는다. 그저 읽듯 그저 쓴다. 그저 살피듯 그저 익힌다. 둘레를 보면, 속이 없으니 겉을 꾸미려 들고, 겉을 꾸미려 드니까 쭉정이 같은 줄거리로도 글과 책을 쏟아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책벌레는 쭉정이책도 집어든다. 쭉정이책은 왜 쭉정이로 가득한 책인지 알아보려고 읽는다. 겉치레책도 챙긴다. 겉치레책은 왜 겉치레로 겉만 휘감는지 찾아보려고 읽는다. 허울뿐인 책을 읽다 보면, 허울이란 무엇이고 하늘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레 느낀다. 속없이 허울로만 채운 책을 느끼거나 알았기에, 책벌레가 쓰려는 글은 ‘하늘빛’처럼 파랗게 물들면서 속으로 여문 이야기를 꾸려야겠다고 배운다. 이러다가 드물게 아름책을 만나면, 삶이라는 길을 이렇게 여미기에 반짝이는구나 하고 배우지. 이곳에서도 배우고 저곳에서도 배운다. 이 책으로도 배우고 저 책으로도 배운다. 모든 책으로 배운다. 모든 책은 새책이다. 모든 책은 배움책이다. 모든 책은 오랜슬기를 담으면서 새빛을 흩뿌리는 씨앗이다.
내가 쓴 글은 나의 역사다. 내가 쓴 것이 나의 역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글에는 그동안의 삶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빈집과 공명》 76쪽
영어 ‘디자인’을 우리말로는 여러 갈래로 옮긴다. ‘그리다’나 ‘꾸미다’나 ‘만지다’로 옮길 수 있는데, 겉으로만 만지면 ‘꾸미다’이고, 속으로 어루만지려고 하면 ‘그리다’를 거쳐서 ‘가꾸다’로 나아간다. 천천히 배우려고 하니 찬찬히 익히면서 온몸과 온마음에 담는다면, 서둘러 선보이거나 내세우려고 하니 그만 겉을 꾸미고 만져서 겉멋과 겉치레라는 허울로 기울고 만다. 책벌레는 겉도 속도 배운다. 우리 몸을 이루는 겉살인 ‘살갗’이 있기에 만지고 쥐고 잡고 다스리고 다룬다. 살갗이라는 ‘겉살’도 대수롭다. 다만 겉살만으로는 못 움직인다. 속살이 있어야 하고, 속살은 뼈와 뼈대가 든든하기에 움직인다. 겉속이 나란하면서 뼈가 굵을 노릇이요, 뼈와 살은 머리로 이끌고, 머리는 마음으로 북돋우고, 마음은 생각으로 짓고, 생각은 저마다 오롯이 빛나는 사랑이라는 숨결로 깨운다. 잎갉이를 하듯 책읽기를 하는 나날이란, 온마음과 온몸을 나란히 움직이는 온넋을 지피는 눈빛을 밝히는 길이지 싶다. 이리하여 또 읽고 자꾸자꾸 읽는다.
ㅍㄹㄴ
《궁극의 미니멀라이프》(아즈마 가나코/박승희 옮김, 즐거운상상, 2016.10.10.)
#アズマカナコ #電氣代500円 #贅澤な每日 (2013년)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타고르/이상영 옮김, 다보, 1990.11.5.)
#RabindranathTagore
《배가본드 21》(요시카와 에이지·이노우에 타카히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5.11.25.)
#バガボンド #Vagabond #吉川英治 #井上雄彦
《Dr.코토 진료소 2》(타카토시 야마다/문희 옮김, 대원씨아이, 2001.6.19.)
#Drコト診療所 #山田貴敏
《빈집과 공명》(신유보, 결, 2024.10.2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