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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황석희한테서 배운다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은 늘 ‘마음’을 담게 마련이면서, 마음은 늘 ‘삶’을 담는 얼거리인 줄 느낀다. 아니, 이 얼거리를 안 느끼거나 못 느낀다면 우리말꽃을 못 쓰고, 낱말책을 못 엮는다. ‘말·마음·삶’이 늘 나란히 흐르는 줄 느낄 때라야 말을 말로 할 수 있고 글을 글로 쓸 수 있다. 누구나 똑같다. 마음없이 뱉는 말은 차갑거나 밋밋하거나 부질없거나 쭉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음없이 꾸미거나 치레하는 글은 그저 ‘주례사비평·주례사창작’이다. 이미 이 나라는 ‘주례사비평’이라는 ‘서평단 주례사 독후감’이 넘치는데, ‘주례사창작’이라 할 ‘듣기 좋은 듯 목소리만 옳게 내는 주례사창작’이 물결친다.


  우리가 읽고 쓰는 모든 ‘글’은 ‘삶을 담은 마음인 말’을 그린 ‘소리무늬(말소리를 눈으로 읽는 무늬로 그린 자국)’이다. 그래서 ‘글’을 글로 그대로 쓰는 분이라면, 언제나 “스스로 살아낸 하루를 먼저 스스로 마음에 담아서 스스로 소리로 옮기는 길”부터 열게 마련이다. 이와 달리 ‘문학창작’이라는 이름을 앞세우려고 하면, 스스로 삶이 없고 마음이 없는 채 겉으로 보기좋게 ‘글꾸미기’를 하고야 만다. 해마다 쏟아지는 ‘문학상 작품집’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기좋게 꾸미는 글”에서 머무는구나 싶더라.


  아무래도 우리말꽃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글을 다 읽으려고 하면서 이모저모 살피고 짚고 따진다. “삶과 마음을 사람과 숲이라는 숨빛으로 담는 글”인지 살핀다. 아니면 “삶과 마음과 사람과 숲을 다 등진 채 겉으로 보기좋게 꾸며서 이름·돈·힘을 얻으려는 텍스트 조합”인지 짚는다. “나라면 이런 글감을 어떻게 이야기로 살려서 줄거리를 여미어 이웃한테 들려줄 글로 쓸”는지 따져 본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몸소 ‘살림’이라는 하루를 ‘사랑’으로 지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라는 이름이다. 서로서로 어떤 ‘사이’에 있는지 새삼스레 생각을 해본다면, 황석희나 서정주나 료나 신경숙이나 정지돈이나 숱한 글바치 겉모습을 누구나 어렵잖이 벗겨내거나 알아채거나 읽어낸다고 느낀다. 우리가 책벌레라는 이웃으로서 오늘부터 새삼스레 ‘읽눈’을 ‘글눈’으로뿐 아니라 ‘삶눈·살림눈·사랑눈·사람눈·숲눈’으로 틔우려 한다면, 참으로 이 별을 아름답게 가꿀 만하지 싶다.


  황석희 같은 사람이 그동안 숨긴 민낯이 드러난 일이란 뭘까? 우리로서 여태껏 어떤 읽눈과 글눈이었는지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놈 하나’를 탓하기는 쉽다. ‘그녀석 하나’를 감싸는 일도 쉽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우리 스스로 가꾸고 배울 대목을 바라볼 노릇이다. 여태껏 ‘꾸밈글쓰기’를 제대로 알아낼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이제부터 가꿀 노릇이라고 배우는 징검다리라고 느낀다. 이미 황석희 글결에서 ‘눈가림’인 줄 눈치채거나 느낀 분이라면, 이이 민낯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적부터 글눈과 읽눈을 찬찬히 일군 줄 깨닫는 일이기도 할 테고.


  아름글을 읽으면서도 배운다. 꾸밈글을 읽으면서도 배운다. 아름이웃을 마주하면서도 배운다. 꾸밈꾼과 돈꾼과 허울꾼과 힘꾼을 스치면서도 배운다. 늘 배운다. 배우기에 차분히 달래고 다독여서 익힌다. 배우고 익히니, 서로 새롭게 잇는 사이에 어떻게 징검돌을 놓고서 이야기를 펼는지 헤아린다. 헤아리고 살피고 짚으니 바야흐로 스스로 생각을 밝힌다. 말 한 마디는 ‘말씨’로 거듭나기에 ‘말씀’으로 깨어날 수 있다. 글 한 줄은 ‘글씨’로 주고받기에 ‘글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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