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책을 읽다 9 ‘헌책’을 왜 읽나?

책벌레수다 : ‘새책’만 사읽으니 갇힌다



  올가을에 거두는 낟알은 모두 지난해에 거두고서 갈무리한 다음에 봄에 심은 씨앗이다. ‘묵은씨’를 심기에 ‘새씨’를 얻는다. ‘헌씨·오래씨’가 언제나 ‘새씨·살림씨’로 잇는 밑바탕이자 첫길이다. 나는 열여덟(고2)에 헌책집이라는 곳에 비로소 눈떴다. 열여덟이 아닌 열 살이나 여덟 살에도 인천 배다리나 곳곳에 헌책집이 있는 줄 알았되, 그냥 어느 책집이든 “책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묻고 살” 뿐이었다. 이러다가 열여덟 살에 “새책집에 없는 책은 헌책집을 찾아다니며 다리품을 팔”면 되는 줄 처음으로 느끼고 배웠다. 게다가 ‘판끊긴책’을 처음으로 손수 이레 남짓 품을 들여서 “인천에 있는 모든 헌책집”을 다 누빈 끝에 마지막집에서 찾아내고서 “그나저나 여기는 어떤 곳이기에 이 판끊긴책이 있을 수 있지?” 싶은 마음에 슬며시 돌아보았다. 이러며 깜짝 놀랐다. 새책집과 다르고 책숲(도서관)과 다른 책시렁이며 갖춤새에 놀랐다. 헌책집은 때곳(시공간)을 가볍게 넘나들면서, 아무리 먼나라 책이라도 들여놓고, 아무리 오래고 묵은 책이어도 “오늘 새롭게 읽을 만하다”면 스스럼없이 건사하는 데였더라.


“역시 인기 있는 만화가 아니면 편집자도 상대를 안 해주나?” “난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에 정직한 편집자도 있죠. 아카후쿠 씨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않을까요?” 《이거 그리고 죽어 7》 81쪽


  갓 태어나는 모든 새책은 여태까지 태어나서 읽은 숱한 헌책·오래책·옛책을 바탕으로 삼는다. 지나온 책이 있기에 새로 책을 내놓는다. 여태까지 온삶을 일구고 가꾼 이야기를 담은 헌책을 돌아보고 되읽고 새기기에, 바로 오늘부터 새글을 쓰고 새책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알라딘 중고샵’이 나라 곳곳에 잔뜩 퍼진 탓에 ‘헌책·헌책집’을 잘못 여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헌책이 팔리기에 새책이 안 팔릴 일이 없다. 헌책과 새책이 다르다. 더구나 “헌책으로 사읽으면 될 줄거리”라면 “구태여 새책으로 사읽을 까닭”이 없다. 헌책집 팔림새하고 새책집 팔림새는 아주 다를 뿐 아니라, 갖춤새도 손님도 책집지기도 다르다. 새책집에서는 새로 나오는 책‘만’ 살피지만, 헌책집은 새로 나오는 책‘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나온 모든 책을 살피고, 이웃나라 책까지 두루 살핀다.


  2000년 무렵에 《하나님의 이야기》(릴케, 박영사, 1961)를 만난 적 있다. 2025년에 새 한글판이 나오기도 하되, 1961년부터 꾸준히 여러 곳에서 틈틈이 새로 한글판을 냈다. 나는 두어 가지 오랜 한글판을 헌책집에서 찾아보았는데, 1961년 한글판이 무척 맛깔스럽다고 느낀다. 2025년 한글판이 안 나쁘되, 다리품을 들여서 예전 한글판을 찾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마침 2026년에 자그마치 스물예닐곱 해 만에 “1961년판 릴케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만났다. 깨알같고 촘촘히 세로쓰기로 여민 조그마한 책이다. 이 작고 묵고 깨알같은 판짜임인 헌책을 장만하는 값이나 2025년 새책을 장만하는 값이나 비슷하다. 때로는 옛판이 훨씬 비싸다.


모기가 사라지면 지금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그 피해는 퍼지고 퍼져 우리에게까지 돌아와요. 더군다나 불임 유전자는 자연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 다른 생물을 멸종시킬 수도 있어요. 《선생님, 유전자를 조작해도 되나요?》 79쪽


  우리는 왜 헌책집에 책마실을 가서 헌책을 애써 사읽을까?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읽는 왼손이 있기에, 여태까지 나왔으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아름다운 책을 찾아내려는 오른손이 있다. 왼손으로는 새책을 읽는다. 오른손으로는 헌책을 읽는다. 이른바 왼손은 새길(새책)이요, 오른손은 오래길(오래책·헌책)이다. 우리는 두 손을 나란히 모두어 ‘오늘길’을 열고 일구고 가꾸고 나눌 노릇이라고 본다. 왼길만 가다가는 날마다 집을 허물어야 한다. 하루만 살아도 모든 집은 ‘헌집’이잖은가? 헌집을 다 허물어야 새집을 짓지 않겠는가?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이나 빵은 ‘묵은쌀·헌쌀·옛쌀’로 짓거나 굽는다. ‘햅쌀·햅밀’로 짓거나 굽는 빵은 고작 하루이틀뿐이다. 여름이며 가을에 먹는 쌀밥은, 이미 “지난해 가을에 거둔 묵은쌀”로 지어서 누린다. 더구나 ‘햅쌀’이라 하더라도 “올봄에 모내기를 하려면 지난해에 거두어서 봄까지 갈무리한 묵은씨앗”이요, 지난해에는 지지난해 묵은씨앗을 심었고, 지지난해에는 지지지난해 묵은씨앗을 심었다.


우리 문학인·예술가들은 생래적으로 고도의 민감성을 존재의 특성으로 합니다. 우리는 세속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고고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인간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불의와 폭력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가진 존재입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170쪽


  책을 얻으려면 아름숲을 베어야 한다. 한두 해쯤 자란 손가락만큼 가늘고 작은 ‘새끼나무’로는 종이를 못 얻는다. 열 해나 스무 해쯤 자란 ‘어린나무’로도 종이를 못 얻는다. 오래오래 자란 ‘어른나무(헌나무·늙은나무)’여야 비로소 종이를 얻는다. 이미 우리는 ‘책’조차 ‘헌나무·헌종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모든 책은 아침에 쓴 이야기를 저녁에 뚝딱하고 펴내지 않는다. 웬만한 책은 대여섯 해나 열 해나 스무 해쯤 들인다.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들인 끝에 태어나는 책이 있다. “책에 담기는 이야기”부터 얼마나 ‘오래얘기·헌얘기·옛얘기’인가?


스피릿이 사는 풍요로운 숲에는 다양한 생태가 펼쳐져 있다. 《스트라바간차 이채의 공주 1》 16쪽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새책”을 얼른 읽어치우고서 ‘알라딘 중고샵’에 넘긴다면, 이때에 책은 ‘책’이기보다는 ‘돈(상품)’이라고 여겨야 맞다. 책이라고 할 적에는, 새책과 헌책을 왼손과 오른손에 나란히 놓으면서 고루 어우르고 추스르는 빛을 이야기로 담아서 나누는 길을 짚는다고 할 만하다. 헌책집에 책마실을 안 가는 사람은 슬기(오래빛)가 얕거나 없기 일쑤이다. 새책집에 책마실을 안 가는 사람은 이슬(새빛)을 놓치거나 잊게 마련이다. 슬기랑 이슬을 고루두루 품는 하루를 살아내기에 ‘살림짓기’를 편다. 둘이 나란할 노릇이다. 둘을 어우를 일이다. 둘을 하나로 맺어야 빛난다.


“잘할 것처럼 생겨가지고 못하고, 못할 것처럼 생겨가지고 잘하고. 선생님은 진짜 요지경이야.” “어쩌면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걸 본인도 잘 모르는 건지도.” “어우∼ 성가셔.” 《바라카몬 9》 142쪽


  책집이라면, 새책과 헌책을 나란히 두어야 맞다고 본다. 책집에는, 새길과 오래길을 나란히 읽고 짚고 나누는 자리(책시렁)가 있어야 맞다고 느낀다. 책읽기를 즐기는 책손이라면, 왼손으로 일구는 새길을 새책으로 펴면서 오른손으로 돌보는 오래길(헌길·옛길)을 어질게 가다듬는 눈망울을 밝힐 노릇이지 싶다. 새책만 읽으니 갇힌다. 헌책만 읽으면 가둔다. 새책과 헌책을 함께 읽으니 가꾼다. 헌책과 새책을 넉넉히 읽으니 언제나 사랑으로 즐겁게 걸어간다. 왼손에 새책을 쥐고 오른손에 헌책을 잡으니, 새롭게 오래오래 흐를 오늘이라는 이야기를 읽고 잇고 일구고 이루면서 익히고 이르게 마련이라, 이제 이름(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지을 수 있다.


《이거 그리고 죽어 7》(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2.28.)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선생님, 유전자를 조작해도 되나요?》(이상수 글·이창우 그림, 철수와영희, 2025.10.3.)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작가선언 6·9 엮음, 실천문학사, 2009.12.7.)

《스트라바간차 이채의 공주 1》(토미 아키히토/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17.11.30.)

《바라카몬 9》(요시노 사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14.9.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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