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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책을 읽다 8 넋나간 짓

책벌레수다 : 넋찾는 길에 읽고쓰기



   우리 삶자락에 깃들 만하구나 싶은 낱말이라면 이제 붙여쓰기를 할 노릇이라고 본다. 국립국어원이나 국어학자가 새 낱말을 알려줄 때에만 붙여쓰기를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짓는 이 삶에서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깨닫고 익히는 대로 새말을 지으면 된다. ‘새말’을 아무나 지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마음은 맞다. 참으로 ‘아무나’ 지으면 안 될 새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으면 될 새말이다. ‘새말 = 사투리’이다. 예부터 모든 곳 모든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말을 지었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한테 이름을 붙이고, 손수 가꾸며 지내는 집에도 이름을 붙이고, 새와 풀과 나비를 바라보다가 이름을 붙인다. ‘이름 = 이르는 소리 = 말’이다. ‘이르다’란 저곳에서 이곳으로 잇는다는 뜻이다. ‘말·이름’을 붙일 적에는, 아직 우리한테 스미거나 녹아들지 않던 저곳에 있는 삶과 살림을, 이제는 이곳에 있는 우리한테 풀어내거나 품는 하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오늘은 문득 ‘읽고쓰다’라는 낱말을 붙여서 적어 본다. 오늘날 숱한 사람은 두 가지를 나란히 한다. 읽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다고 여기기 어렵다. 읽기에 쓰고, 쓰기에 읽는다. ‘읽고쓰기’하고 ‘쓰고읽기’는 함께 흐른다.


참새가 입원하면 먼저 지렁이를 찾고, 나비의 애벌레를 모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빠귀는 나방이 주식이에요. 이들이 입원하면 의료진 모두 곤충 채집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물총새가 입원하면 다들 어부가 된 듯 뜰채를 들고 강으로 나서고, 눈토끼가 오면 농부로 변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55쪽


  나는 아무래도 넋나간 듯 책을 읽고 글을 쓰는구나 싶다.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으나, 손에 닿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한 사람이 읽어낼 만한 책은 그리 안 많다지만, 온갖 책을 안 가리면서 읽으려고 한다. 온갖 사람을 딱히 안 가리고 싶기에 책도 그저 모두 집어들어서 줄거리를 짚고 이야기를 느끼려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그루(주식)가 껑충 뛴다고 말이 많은데, 난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그루에 돈을 놓을 뜻이 아주 없다. 나는 읽고쓰기에 돈과 품과 마음을 들이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이라면 씨앗돈이 있으면 얼른 그루에 돈을 놓아서 돈벼락을 맞을 수 있을 텐데, 돈벼락을 등진 채 책벌레에 글벌레로 살아가려고 하니, 참으로 넋나간 짓일 만하다.


트리혼은 《머리 없는 괴물》에 대해 독서 감상문을 쓸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만화책에 대한 독서 감상문을 써도 된다고 한 적은 없지만, 쓰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었다. 《트리혼의 보물 나무》 29쪽


  일본 훗카이도 두멧골에서 ‘이웃돌봄터(동물병원)’를 꾸리는 집이 있다지. 이웃인 들짐승은 돌봐준들 값(치료비)을 치르지 않는다. 숲짐승이나 들짐승이 무슨 돈을 건사하겠는가. 돈나라(자본주의)로 친다면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훗카이도 이웃돌봄터 사람들은 넋나간 짓을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온몸을 바쳐서 한다. 나는 어느 터(회사·직장·기관·연구소·학원·재단)에 몸두지 않으면서 낱말책을 쓴다. 어느 터에 몸두면 다달이 일삯이 나올 뿐 아니라, 심부름꾼을 두면서 수월하게 낱말책을 쓸 테지. 자잘한 모든 일을 남한테 맡기고서 뜻풀이만 해도 될 텐데, 심부름꾼이 여럿이면 뜻풀이마저 맡길 수 있다. 그런데 밑글을 모으고 살피고 추스르는 자잘한 일부터, 말밑을 캐고 찾고 알아내면서, 이 모든 줄거리를 이야기로 묶어서 글로 쓰는 데까지 오롯이 혼자 한다. 이러며 집일과 집살림을 고스란히 맡는다. 이러며 아이들하고 놀고 수다를 떤다. 이러며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고, 곧잘 시골버스로 읍내로 가서 저잣마실을 하지.


“있지,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지금 멀리 간 거지?” “응, 이젠 안 돌아와.” “많은 엄마들 중에서 우리 엄마한테 온 거니까, 다시 올 거야.” “엄마, 아가 얼른 돌아오라고 내가 편지 썼다? 여기, 받으세요♡” 《투명한 요람 2》 73쪽


  둘레(사회)에서 바라보는 “넋나간 짓”이라면, 겉돈하고 담쌓은 삶이라 할 만하다. 느닷없이 돈벼락에 올라앉을 오늘날 이 나라하고 엇나간다면 넋나간 짓이다. 어느 터에든 슬그머니 올라타서 목돈을 만지거나 이름값을 높이려는 길을 손사래칠 적에도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우리집 아이뿐 아니라 이웃집 아이를 보더라도 ‘어른으로서’ 살아가려 하는 마음에다가 ‘사람으로서’ 일하려는 마음이기에, 둘레가 아닌 ‘나너우리’를 바라보려고 한다. 나너우리로 맺고 품는 푸른별이라는 곳에서는 ‘어른으로서 + 사람으로서’라는 길을 잊는 모습이야말로 “넋나간 짓”이라고 느낀다. 나는 넋찾기를 하려고 읽고쓴다. 나는 뭇이웃 누구나 넋찾기를 스스럼없이 너끈히 하기를 바라며 읽고쓴다. 우리가 함께 누리고 나눌 아름책과 아름글을 헤아리면서 읽고쓴다.


“용신은 믿지 않으면서 그런 건 믿으시네요.” “다 그런 거야.” 용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옛날 일이에요.” 《드래곤 키워 주세요 1》 113쪽


  ‘집’이란, 지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집’이라는 낱말이 왜 ‘집’인 줄 까맣게 잊거나 안 쳐다보기 일쑤이다. ‘밥’이란, 바다와 바람한테서 오는 바탕을 받아들이는 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밥’이라는 낱말이 왜 ‘밥’인 줄 아예 잊거나 안 바라보곤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수수한 낱말·이름을 깡그리 잊다가 잃는 굴레라고 할 만하다. 그야말로 ‘문해력·어휘력’ 같은 일본말씨가 춤출 뿐 아니라, 이런 일본말씨를 붙이는 글장사와 말장사가 판치는데, 정작 ‘글눈·말눈’을 저마다 스스로 익히면서 삶을 가꾸는 길하고 어울리는 읽고쓰기는 좀처럼 날개를 못 편다고 느낀다. 그루에 돈을 놓아서 벼락돈을 맞는 데에 넋이 팔린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좋게 보아주기를 비느라, 막상 “내가 나를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바람이 되고 바다로 서는 길”을 등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넌 그게 나아. 쓸데없는 건 보지 마. 하나만 보면 돼.” 106쪽


  ‘지기’란 어떤 사람일까? ‘지기’란 “집을 일구고 돌보며 지키는 일꾼”을 가리키는 이름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고을지기(지자체장)라든지 벼슬지기(국회의원·기초의원)를 맡는 무리를 보자. 이 나라에서 어떤 고을지기나 벼슬지기가 “집을 지키는 어진 일꾼”으로 서는 삶일는지 아리송하다. 집을 일구려면 집일을 맡을 노릇이다. 집을 돌보려면 집살림을 할 노릇이다. 집을 아끼고 사랑하려면 몸소 아이를 품으면서 가르치고 이끌며 함께 걸어야 할 노릇이다. 아이랑 손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넉차린’ 몸짓이라고 느낀다. 아이랑 손을 안 잡고서 눈도 마주보지 않는 몸짓이라면 ‘넋나간’ 하루라고 느낀다. 아이곁에서 읽고쓰기를 하는 수수한 매무새일 적에만 ‘어른’이지 싶다.


ㅍㄹ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다케타쓰 미노루/안수경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2.20.)

《트리혼의 보물 나무》(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글·에드워드 고리 그림/이주희 옮김, 논장, 2009.9.5.)

#TreehornsTreasure #FlorenceParryHeide #EdwardStJohnGorey

《투명한 요람 2》(오키타 밧카/서현아 옮김, 문학동네, 2022.12.2.)

#透明なゆりかご #沖田×華

《드래곤 키워 주세요 1》(마키세 쇼운 글·히가시우라 유키 그림/김동욱 옮김, 재담, 2024.12.31.)

#ドラゴン養やしなってください #牧瀨初雲 #東裏友希

《안녕, 아름다운 날 8》(아카네다 유키/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5.5.15.)

#さらば佳き日 #?田千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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