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3.29.
까칠읽기 122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신민주
디귿
2021.4.16.
돈(연구비)을 넉넉히 타면서 살림살이 걱정이 없이 글(연구논문)을 쓰는 길잡이(대학교수)는 셈값(숫자·통계·도표)에 얽매여 먼발치에서 구름에 앉아 구경하는 눈이라고 느낀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일꾼(활동가)이 쓰는 글(보고서·르포)은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웃집 이야기를 자주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스스로 보내는 삶하고는 먼발치에 있어서 속으로 녹아들지 않는 눈이라고 느낀다.
가난집이나 가난칸에서 지내는 사람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구경글(관전기·관람기)’이 아니라, 스스로 온몸으로 살아낸 바가 아니라면, “스스로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일하는 아이들》이나 《파리아의 미소》나 《니사NISA》처럼 ‘그곳 그사람’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낼 적에 이 나라와 이 별을 가꾸거나 바꿀 길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나눌 만하다고 본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돌아본다. 처음에는 ‘칸(한두 칸)’을 빌려서 달삯을 내는 사람들 목소리와 삶을 얼핏 옮기는가 하고 느끼다가, 갈수록 ‘칸살이’ 목소리가 사라진다. 칸살이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내고 싶다면, 글쓴이 스스로 “제대로 가난하게 살아야”지 싶다. ‘정당인’이라고 해서 “안 가난”하지는 않을 텐데, 가난하게 살아가며 칸살이로 몸마음을 쉬고 일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까지 적어내지는 못 하는구나 싶다.
‘대학교 과방·동아리방’이 넓은 데도 있을 수 있으나, 그냥 조그맣거나 휑뎅그렁한 데도 많다. 이런 데서 이불조차 없이 쪽잠으로 웅크리는 밤이 칸살이보다 낫다고 여겨서 한밤을 보내는 가난배움이가 꽤 있다. 비록 춥고 배고프며 고단한 쪽잠이되 ‘대학교 과방’은 ‘고시원’에 대면 으리으리한 임금집 같다. 동트는 해를 느끼면서 기지개를 켜고, 드넓은 마당에서 몸을 풀고, 아무도 없는 뒷간에서 고즈넉히 씻고 머리를 감고서 이른새벽을 보내고서, 조용히 책을 읽고 새하루를 맞이하는 나날이다. 다만 밤에는 지기(수위) 아저씨가 ‘과방·동아리방 쪽잠’을 누리는 젊은이가 있나 하고 돌아보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나면 조용히 숨기도 해야 한다.
이러구러 서울이라는 데는 숱한 가난배움이와 가난이한테는 집살이 아닌 칸살이일 수밖에 없는데, 왜 서울에서 버티는지 더 들여다보아야 이 책을 이루는 줄거리를 제대로 짚을 수 있지 않을까? 구태여 서울에서 버틸 까닭이 없이 시골에서 손수짓기와 새살림으로 집살이를 할 수 있다는 대목을 나란히 짚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쓴 분을 비롯해서, 글바치(대학교수·전문작가)는 하나같이 서울에서 살 뿐이라 시골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집살이를 아예 모르거나 아주 안 보거나 앞으로 그릴 즐거운 꿈(대안)으로 못 삼는다고 느낀다. ‘기본소득당’이 ‘서울이 아닌 시골 군의원’부터 해낼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밑살림돈(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사람들한테 알릴 만하다고 본다.
ㅍㄹㄴ
그 애가 보증금 50, 월세 18만 원짜리 방에서 산 지 몇 년이나 지난 후 문득 나는 그때의 일에 대해 물어봤다. 그 방에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고단하지는 않았냐고. 그러자 그 애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집에 가기 전,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매일 과방에서 잠을 잤어요. 가끔이 아니라.” 28쪽
그제야 뒤늦게 이태원에 잘 안 간 이유가 하나 더 기억났다. 이태원은 너무 비쌌다. 33쪽
가난은 낭만이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구출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마음 착한 시민들이라면 그것은 미담이 아니라 불행이다. 45쪽
엄마는 단 한 순간도 ‘우리’ 집에 얹혀살지 못했다. 사랑하고 가꾸는 일, 돌보고 챙기는 일이 모조리 엄마의 것이 돼서는 안 됐다. 50쪽
사람들은 앞으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할 것을 약속해야 했고,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다는 것을 긴 서류로 알려야 했으며, 내 장애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사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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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신민주, 디귿, 2021)
누군가는 기본소득이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 누구는 밑살림돈이 지나치게 뜬구름이라고 헐뜯을지 모른다
→ 누구는 밑돈이 지나치게 바보같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 누구는 씨앗돈이 지나치게 말이 안 된다고 비웃을지 모른다
8
가난은 낭만이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달콤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삶도 꽃빛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봄꿈이어서는 안 된다. 가난살이도 곱게 써없애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멋이어서는 안 된다. 가난삶도 곱상하게 머금어서는 안 된다
45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살고 있지만 어느새 그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해지고 말았다
→ 누가 돌봐주며 살지만 어느새 숨쉬기처럼 마땅하게 여기고 만다
→ 누가 돌보기에 살아가지만 어느새 숨쉬기처럼 잊어버리고 만다
53
잉여로운 사람들과 잉여롭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 남아도는 사람들과 남아돌듯 하루를 보내다 보니
→ 노닥이는 사람들과 하루를 노닥이다 보니
77
그들은 제주도 위에 막 상륙한 상태였다
→ 그들은 제주섬에 막 내렸다
→ 그들은 제주섬에 막 내려앉았다
9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