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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책을 읽다 1 책벌레란

책벌레수다 : 입시지옥이 베푼 읽눈



  나는 낱말책을 쓴다. 여태 쓴 여러 책에 드문드문 밝히기는 했는데, 낱말책을 쓰자고 처음 마음먹은 때는 1992해이다. 우리 낱말책(국어사전)을 첫벌로 다 읽으면서 “뭐 이렇게 엉터리인 책이 국어사전이지?” 하고 느꼈고, 두벌로 다시 읽으면서 “이 따위가 국어사전이라면 차라리 내가 쓰겠어!” 하면서 책상을 두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때 나는 ‘민중서림 이희승판 엣셋스 국어사전’을 읽었는데, 일본말과 일본영어와 일본상표를 이렇게 잔뜩 실어 놓고서 ‘올림말을 확 늘렸다’고 뻔뻔하게 자랑하는 얼거리가 어처구니없었다. 이런 엉터리이니 “마치 우리말이 적고 한자말이 많은 줄 잘못 여기”는 사람마저 많다. 이러다가 1999해였나,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중국 땅이름을 엄청나게 올림말로 삼았고, 중국뿐 아니라 푸른별 웬만한 나라 땅이름에 사람이름까지 마구잡이로 올림말로 삼았으며, 이제 어느 누구도 안 쓰는 뜬금없는 옛 한문에 나오는 ‘죽은 한자말’도 마구마구 올림말로 삼더라. 왜 우리말을 안 싣고서 딴나라 딴이름을 국어사전에 실어야 할까? 조선 무렵 나리나 벼슬아치 이름을 왜 국어사전에 실어야 하지?


“그러고 보니, 나 유카타를 입은 것도, 다함께 불꽃놀이 보러 간 것도, 다 처음이었어. 고마워.” 《태양의 집 5》 20∼21쪽


  아무튼 1988해에 어린배움터를 마치고서 푸른배움터로 들어가는데, 1990해에 난데없이 배움늪(입시지옥)이 확 바뀐다. 나라에서는 그저 깜짝잔치로 바꾸었고, 1993해부터 ‘학력고사’를 안 하고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으로 바꾸면서, 첫 해에는 9달과 11달에 두 벌 치러서 나은 값으로 배움늪을 치르라는 틀을 내놓았다. 더구나 1993해 여름까지 모든 큰배움터에서 ‘본고사’를 치른다고 하다가 막바지에 이르러 ‘본고사’를 안 치르기로 한 곳이 잔뜩 나왔는데, 내가 들어가려는 큰배움터는 다 본고사를 치르기로 했고, ‘면접’까지 치렀다.


“언니를 울트라 캡숑 사랑한다고 쓰여 있어.” “사랑한다고만 쓰여 있잖아.” “마음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야.” “뭐라는 거야.” “히로 오빠도 나를 본받도록 해. 그럼 히나랑도 친해질 수 있을걸.” 《태양의 집 7》 112쪽


  어찌저찌하다 보니, 1991∼1993해 세 해 동안 국어사전·영어사전·영영사전·독일어사전·옥편 다섯 가지 낱말책을 날마다 바리바리 들고 다녔다. 내가 나고자란 인천에 있는 배움터는 짐칸(사물함)이란 없었고, 이른바 ‘고등학교’에 시늉처럼 있던 짐칸에 뭘 두면 으레 도둑맞았다. 내가 쓰는 배움책(교과서·참고서)을 훔치는 또래가 잦았다. ‘내신 15등급’으로 촘촘히 가르던 그때에 나는 ‘1등급’까지 들지 못 했으나 ‘1.5등급’ 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동 말 동했다. 내가 쓰는 배움책은 글적이(필기)가 좋다며 빌리는 또래가 많았는데, 짐칸에 둘라치면 어김없이 이튿날 사라지더라. 그래서 세 해 내내 다섯 가지 낱말책에 모든 배움책을 큰짐으로 그냥 들고 다녔다. 이때 내 책가방은 무게를 달면 30kg이 넘었다. 낱말책과 배움책뿐 아니라 ‘그냥책’도 날마다 대여섯 가지를 챙겨서 다녔다. 쉬는틈이나 낮밥틈하고 혼배움(자율학습)이면 으레 ‘그냥책’을 펼쳐서 읽었다. 집과 배움터 사이를 오가는 2시간 즈음에도 으레 그냥책이나 성문영어나 수학정석을 읽으면서 살았다.


‘모두 다 보물이야.’ 《태양의 집 11》 101쪽


  아무래도 책벌레 밑싹은 푸른배움터 여섯 해에 차근차근 다졌지 싶다. 첫 세 해(중학생)에는 06:00∼22:00를 배움터에 붙들리면서 ‘읽눈’과 ‘짐꾼살이’를 다졌고, 나중 세 해(고등학생)에는 05:30∼23:00를 배움터에 붙들리면서 ‘온갖읽기’와 ‘낱말찾기’에 ‘짐꾼살이’를 뿌리내리는데, 1992∼1993해 이태에는 이레마다 이틀씩 저녁에 자율학습·보충수업을 빼먹으면서 인천 배다리책거리에 있는 헌책집으로 책집마실을 다녔다. 17:00에 긴긴 하루(정규수업)가 끝나는데, 이레마다 이틀씩 몰래 담을 넘었고, 인천 용현동에 있는 배움터부터 달음박질을 했다. 용현동부터 금창동까지 시내버스가 다니기는 했으되 버스틈이 길고, 길삯이 아쉽더라. 마을버스하고 시내버스를 타자면 200원 즈음 드는데, 200원이면 낡은 손바닥책 한 자락을 살 돈이다. 배움터에서 내내 앉아야 하니 엉덩이가 짓무를 듯해서 달리고 싶기도 했다. 건널목에서 기다릴 때를 빼고는 아예 안 쉬면서 25∼30분을 달리면 책거리에 닿았다. 땀을 오지게 쏟더라도 책집에 깃들어 책을 쥐면서 책바다에 뛰어들면 이내 식게 마련이다.


이십몇 년 어치의 신경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 본 적이, 나의 무겁고 둥근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모두 꼴사납다 여겼으므로 … “야 이 ×야, 할머니가 사 준 바람막이란 말이야! 아, 진짜 나도 좀 살자!”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64쪽


  그때 왜 읽었을까. 그때는 모든 곳에서 늘 주먹질과 매질이 춤사위였고, 배움터 골마루에는 으레 보름마다 치르는 갖가지 셈겨룸(중간·기말·월말고사 + 모의고사)을 값으로 매겨서 담벼락에 줄줄이 붙이는데, 으레 30∼50자리까지만 이름을 올렸지 싶다. ‘첫 수능세대’는 쥐(모르모트)였기에 그무렵 모든 입시학원에서 거저로 모의고사를 베풀었다. 그야말로 내도록 셈겨룸이 안 끊이는 죽음수렁이었다. 셈겨룸이 안 끊인다고 할 적에는 배움터 길잡이가 값(성적)에 따라서 몽둥이질을 끝없이 베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나 고르게 맞았다. 지난 셈겨룸에서 100이었어도 다음 셈겨룸에서 95라면 5만큼 맞는다. 참으로 고르게 가르치는 배움터에서 ‘고르다’가 무엇인지 스스로 길을 찾고 싶어서 배다리책거리로 달려가서 “학교에서 안 읽히고 안 가르치고 안 말하는 책”을 차곡차곡 챙기면서 읽고 또 읽었다.


왜 쓰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쓰는 겁니다.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정상태, 유유, 2018) 23쪽


  흔들리는 버스에서 멀쩡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는 버릇은 1991해부터 들였다. 1991해 7달까지는 걸어서 40분쯤이면 닿는 곳에서 살았고, 그 뒤로는 시내버스로 40분 남짓 달려야 닿는 곳에서 살았다. 인천 연수동에서 이제 막 잿더미(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마구마구 올려세우느라 하염없이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새벽 첫버스와 밤 끝버스를 가까스로 타면서 다녔다. 어두침침한 시내버스에서 멀미를 안 하려고 책을 읽고 낱말책을 외우고 수학정석을 풀고 성문영어 푸른책을 한 쪽씩 뜯으면서 읊었다. 1991∼1993해에 비탈길에서 흔들거리다가 굴러떨어질 듯한 시내버스를 30kg짜리 책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한 손으로는 책을 읽으며 타던 얼척없는 앳된 책벌레 한 마리가 태어난 셈이다.


ㅍㄹㄴ


《태양의 집 5》(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6.15.)

《태양의 집 7》(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4.8.15.)

《태양의 집 11》(타아모/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5.9.15.)

#たいようのいえ #Taamo #タアモ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정세랑, 창비, 2019.6.21.)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정상태, 유유, 2018.4.2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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