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모처럼 앉아서
집밖으로 나와서 움직일 적에는 으레 내내 선다. 자리에 안 앉는다. 시골버스를 타면 글을 쓰려고 슬쩍 앉기는 한다. 마을과 읍내 사이가 16km라서 한참 달린다. 이 기나긴 길에 읽기랑 쓰기를 즐기며 다닌다. 오늘은 읍내 나래터로 책을 부치러 나와서 돌아가는 길이다. 집으로 갈 시골버스를 34분쯤 기다리다가 걸상에 앉아 본다. 아직 2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책 한 자락은 다 읽었고, 글과 노래도 조금 썼고, 숨을 가늘게 고른다.
우리집 쑥이 돋았다. 읍내 가게는 쑥을 꾸러미로 판다. 곧 잣나물을 훑어서 먹을 수 있다. 늦겨울해가 높고 길다. 곧 깡똥소매에 깡똥바지로 갈아입을 철이다. 한낮은 살짝 더운데, 겨울오리는 문득 너무 덥다고 느낄 수 있다. 깨어난 개구리가 여럿이고, 무당벌레가 팔뚝에 내려앉아서 같이 걷기도 했다. 깡총거미가 봄꽃 사이로 뛰어다닌다. 굴뚝새도 박새도 동박새도 직박구리도 한결 개구지게 날아다닌다. 이러다가 다시 얼어붙을 만한데, 아무리 얼음날이 또 찾아오더라도 겨울은 저물어간다.
얼다가 녹고 풀린다. 풀리기에 얼고서 또 녹는다. 이러며 시나브로 봄으로 건너가고, 덥다고 풀리다가 시원하다가, 새삼스레 덥고 찌며 열매가 무르익는 철로 새록새록 건너간다. 하루가 돌고, 이레가 흐르고, 보림을 지나고, 달을 가르고, 철을 넘나드니, 어느새 해가 바뀌어, 누구나 새롭게 한 살을 머금는다. 차분히 나이를 머금으니 서로서로 어질게 말을 나누며 자란다. 저마다 주고받는 말에 마음을 살며시 얹으니 바야흐로 생각꽃이 피어나서 향긋하게 퍼진다. 2026.2.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