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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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이 있기에 몸을 세웁니다. 밑이 없으면 못 서기도 하지만, 못 걷고 못 달리고 못 뛰며 못 삽니다. 나무를 마주할 적에 흔히 줄기나 가지나 잎이나 꽃을 보는데, 때로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와 나비를 보는데, 막상 땅밑에서 든든히 뻗는 뿌리를 헤아리지 못 하는 분이 많아요. 땅밑에 있어서 얼핏 눈에 안 띄기에 뿌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푸른별에서 바다가 바닥을 이루면서 뭇숨결이 태어나는 바탕으로 있기에 바람이 파랗게 들숲메가 푸를 수 있습니다. 《밑바닥에서》는 돌봄터(병원)에서 밑자리를 이루지만 정작 온나라가 거의 못 들여다보거나 안 쳐다보는 돌봄이(간호사)가 겪는 나날을 수수하게 풀어놓습니다. 첫머리를 펴면 돌봄지기(의사)라는 이름인 이들이 얼마나 사납거나 마구잡이인지 밝힐 듯싶으면서도, 정작 책을 펴면 ‘얄궂은 짓을 일삼는 돌봄지기’ 모습은 몇 가지 안 나옵니다. 글쓴이가 돌봄이로 지내며 마주하는 아픈이(환자)하고 얽힌 나날이 가득해요. ‘태움’이 무엇인지 밝히겠다는 머리말과는 달리 ‘태움’이 몇 가지로 나타나는지 단출히 적바림하고서 끝납니다. 그러면 이 책은 “이 나라 돌봄터에서 밑바닥을 이루는 이슬방울 같은 땀방울 이야기”라는 대목으로 눈길을 맞추어서 첫머리와 머리말을 적고서 풀어야 맞을 텐데요? 이렇게 풀어내는 글도 훌륭합니다만, 글을 ‘문학’처럼 잘 쓰려고 너무 힘을 들였다고도 느낍니다. 그저 수수하게, 나무뿌리와 같이, 푸르게 우거지는 나무를 받치는 든든한 살림빛이라는 곳을 들여다보면 넉넉했을 텐데 싶어서 아쉽습니다.
ㅍㄹㄴ
《밑바닥에서》(김수련, 글항아리, 2023.2.10.)
담당 레지던트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전화하면 안 받거나, 받은 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더대로 해요”라고 했다. 혹은 “어쩌라고요”라거나 “바빠죽겠는데 진짜”라면서 끊기도 했다. 대답 없이 끊을 때도 있었다. 다른 간호사에게는 욕설을 했다고도 들었다. 욕설쯤 들어도 괜찮으니 그저 내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만 줬으면 싶었다.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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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글은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여기에 실은 글을 읽다가 거북할 수 있다
→ 이 글을 읽고서 떨떠름할 수 있다
→ 이 글을 읽다가 짜증날 분이 있으리라
→ 누구는 이 글이 거슬릴 수 있다
→ 누구는 이 글이 못마땅하겠지
8쪽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후 쌓아온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를 담았다
→ 돌봄이로 일하며 쌓아온 삶과 얘기를 담는다
→ 보살핌이로 지내며 겪은 일과 속내를 담는다
12쪽
그때는, 데이Day 출근이면
→ 그때는, 낮일을 하면
→ 그때는, 낮에 일하면
21쪽
그냥 완충지대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바람막이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막아주라는 뜻이다
→ 그냥 뽁뽁이가 되라는 뜻이다
→ 그냥 감싸주라는 뜻이다
→ 그냥 누그러뜨리라는 뜻이다
→ 그냥 재우라는 뜻이다
26쪽
대체로 딸들의 용서, 혹은 아빠들의 변화, 그리고 시간이 요구되거나 혹은 그 모두가 요구된다
→ 으레 딸이 봐주거나 아빠가 바뀌거나 오래 걸리거나 이 모두가 있어야 한다
→ 여태 딸이 눈감거나 아빠거 거듭나거나 한참 들거나 이 모두가 있어야 한다
96쪽
힘으로는 팔척귀신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꺽다리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큰깨비처럼 훌쩍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크게 자란 아들을
→ 힘으로는 우람하게 자란 아들을
98쪽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인성들의 밑바닥을 본다. 그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것을 닮아간다
→ 여기서 우리는 어떤 사람 밑바닥을 본다.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냥 닮아간다
→ 여기서 우리는 됨됨이 밑바닥을 본다.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대로 닮아간다
143쪽
모두가 알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모두한테 알리려고 온힘을 다했다
→ 모두한테 알리고 싶어 땀을 뺐다
→ 모두 알기를 바라며 힘을 다했다
150쪽
내가 대신 말할 때조차 그들의 이름은 익명이어야만 한다고 요구받았다
→ 내가 나서서 말할 때조차 그들 이름은 숨겨야 한다고 내걸었다
→ 내가 나가서 말할 때조차 그들 이름은 감춰야 한다고 닦달했다
2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