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0.30.
《나비를 잡는 아버지》
현덕 글, 원종찬 엮음, 창비, 2009.5.29.
비로소 느긋이 새벽을 맞는다. 오늘만큼은 어디에도 안 나간다. 등허리를 느긋이 펴며 01시를 열고서 일을 하다가, 06시쯤 즐겁게 다시 몸을 편다. 풀벌레노래는 다 잦아든 듯싶다. 아침저녁으로 텃새노래를 듣는다. 감을 쪼는 새는 즐겁게 외친다. “봐! 봐! 새빨간 요 녀석! 아주 맛나!” 새가 한 해 동안 벌레잡이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 감알쯤 한 자루 내주어도 된다. 저물녘에 두바퀴를 달리려 했는데 뒷바퀴 바람이 푸쉬쉬 빠진다. 길에서 못이나 가시를 밟았거나, 들고양이가 두바퀴 곁에서 자다가 긁은 듯하다. 이튿날 낮에 뜯어서 고쳐야겠다. 저녁에 맵밥(카레)을 끓인다. 같이 맵밥을 먹고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함께 본다. 굳이 더 볼 까닭이 없이 엉성하고 맹한 줄거리이다. ‘일본 오니’랑 ‘하늬 산송장(좀비)’을 ‘한나라(한국)’ 살림인 듯 꿰맞추었네. ‘탈 쓴 깨비’가 아닌 ‘그냥 오니 낯짝’인걸. ‘일본스런 바비인형’인 아이들인데 무슨 ‘한노래(케이팝)’일까. 돈벌이는 안 나쁘되 돈만 쳐다볼 적에 어떤 그림이 태어나는지 잘 보았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오랜만에 되읽는데, 이제는 다시 읽히기 어렵겠다고 느낀다. 처음 현덕을 읽을 적에는 1930해무렵 작은살림을 엿볼 만하다고 여겼는데, 작은살림은 다루되 작은살림을 잇고 가꾸는 데까지는 미처 못 뻗었구나 싶다. 때(시대)를 담은 대목으로도 알뜰한 글일 수 있지만, 때문(터문)도 담아야 하지 않을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