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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1.1.


《사랑은 하트 모양이 아니야》

 김효인 글, 안전가옥, 2025.2.14.



부산으로 일을 가는 새벽에 큰아이 이마를 쓸어넘기니 문득 눈을 뜬다. “아버지, 어디 가요?” “응, 부산.” 사흘 동안 두 아이가 곁님하고 이모저모 챙길 살림길을 들려준다. 이제는 굳이 안 들려주어도 세 사람이 어질게 잘 한다고 느끼지만, 언제나처럼 꼬박꼬박 이야기한다. 우리가 함께 보금살림을 짓는 밑힘이란 늘 ‘이야기’이니까. 빈자리 없는 부산버스를 네 시간 달린다. 사상나루에 내려서 〈책과 아이들〉에 짐을 풀고서 곧장 〈금목서가〉로 간다. 부산인문연대에서 짬을 내주어 ‘부산 작은책집 나들이’를 꾀한다. 오늘로 넉걸음째이다. 일흔 살 남짓 살아내면서 ‘부산 영광도서’는 알아도 ‘부산 작은책집’은 처음이라는 이웃님한테 왜 굳이 다리품과 짬과 돈을 들여서 작은책집으로 나들이를 하는지 이야기한다. 우리는 ‘눈’으로뿐 아니라 ‘손’과 ‘발’과 ‘마음’으로도 책을 읽으니까. 《사랑은 하트 모양이 아니야》를 오늘 〈금목서가〉에서 장만했고 밤에 읽는다. 글꽃(소설)이다. 나나 곁님이나 우리집 아이들은 이러한 글은 안 읽지만, 둘레에서 책읽는 이웃은 이러한 글을 꽤 읽는다. 곁님은 요새 〈도깨비〉라는 예전 놀이판(연속극)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면서 여러모로 말한다. ‘도깨비’란 무엇인가? 도깨비가 ‘사람몸’을 입을 수 있는가? 우리는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가 입은 옷(사람탈)’을 도깨비로 잘못 여기지 않나? 글은 ‘글’인데, ‘문학’이나 ‘소설’이라는 옷을 입히면서 글빛이 사라지거나 바래지 않나?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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