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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9. 부끄러운 줄



  부끄럼짓을 일삼는 사람이 늘 보인다. 나부터 으레 부끄럼짓을 하니까 그대로 느끼는가?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참으로 어릴적부터 모두 부끄럽고 창피하고 수줍었다. 말소리가 새고 혀짤배기라서, 공을 못 차서, 고삭부리라서, 코머거리라서, 힘없으니 날마다 매바심으로 집과 마을과 배움터에서 시달려서, 용을 써도 100점은 거의 없이 96이나 97에서 넘어져서, 중학생 무렵부터 오래달리기는 노상 첫째였으나 시험에서는 첫째를 해본 일이 없어서, 짐을 나르다가 떨어뜨려 깨뜨려서, 굶는 주제에 책은 끝없이 사읽으며, 모두 부끄럽고 창피하고 수줍을 뿐이었다.


  쉰이라는 나이를 넘어서며 생각한다. 부끄러운 줄 알면 스스로 밝히면서 찬찬히 씻을 수 있더라. 창피하다고 말하기에 어느새 손수 털더라.


  남이 나를 바꾸지 않는다. 남이 나를 돌보거나 가꾸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를 보고 바꾸고 가꾸고 돌본다. 너는 너를 보살피고, 나는 나를 보듬는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는 그윽한 눈길로 스스로 북돋우고 일으킨다. 우리가 서로 미워한다면 서로 할퀴는 눈길로 몸소 갉아먹는다.


  오늘 어디로 가는지, 오늘 어떻게 눈을 뜨려는지, 오늘 무슨 말을 하고 들으려는지 곱씹는다. 다시 비날을 맞이한다. 등짐을 씌우고서 맨몸으로 걷는다. 빗물은 뺨을 타고서 흐르면 된다. 빗방울에는 구름맛이 감돌고 바다맛이 서리고 바람맛이 가득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온살(100살)이나 두온살(200살)에도 맨몸으로 비를 누리면서 걸으려고 한다. 혼쇠(무인자동차)가 나오더라도 걸으려고 한다. 나는 팔다리로 온삶을 즐기면서 하루를 노래하는 길을 가려고 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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