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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8. 미워하는 우리



  미워하면 고개돌린다. 미워하니 등돌린다. 미워하니 따돌린다. 그놈이나 그들만 우리를 등지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우리도 그놈과 그들을 따돌린다. 서로 미워하기에 서로 홱 고개젓고 가로젓고 손젓고 그저 멀리멀리 내치기만 한다.


서로 다르게 보는 줄 알면, 미워할 까닭이 없다. 왼오른이건 이쪽저쪽이건 서로 다르기에 늘 만나고 자주 어울리면서 끝없이 이야기로 풀어갈 노릇이다. “같은 무리”끼리만 해먹어야 한다고 여기니까 안 만나고 안 보고 안 듣고 안 어울리고 안 얘기하고 그저 서로 밉질과 손가락질을 일삼고서 싸울 뿐이다.


  서로 다른 줄 안 보고 안 느끼고 안 배우고 안 받아들이는 터라, 서로 잘잘못만 따지면서 누가 더 크게 몹쓸놈인지 키재기에 사로잡힌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 배워서 담을 빛이 있다. 저쪽을 비아냥대야 하지 않는다. 저쪽을 ‘비(非)-’라고 하는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 일본말씨’로 깎아내리려고 한다면, 바로 ‘비 아무개’가 아니라 그대부터 좀먹는다.


  책집마실을 하며 온갖 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장만할 책도 한참 서서 읽는다. 안 장만할 책도 이다음에 다시 펼칠 일이 없도록 찬찬히 읽는다. 살 책이건 안 살 책이건 우리가 손을 뻗어서 들추기에 스스로 알아보고 알아차릴 뿐 아니라, 사읽는 책과 안 사읽는 책 모두한테서 배운다.


  고흥집을 나설 적에 가볍던 등짐은 두 손에까지 짐꾸러미가 가득하다. 고흥에서 이틀을, 부산에서 사흘을 속비움으로 보내니 온몸이 가볍다. 설마 속비움에 이바지하는 찬앓이(냉방병)가 훅 치고 들어왔을 수 있다. 이제 목은 가라앉는다. 아직 물이나 침을 넘기려면 목구멍이 쓰리지만 닷새 앞서를 대면 아주 낫다. 사상나루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뙤약볕을 15분쯤 머금었다. 팔뚝으로 땀방울이 꼭 새벽이슬마냥 몽글몽글 줄줄이 돋더라. 구름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가을하늘 같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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