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깃새글꽃 (2025.5.8.)
― 부산 〈책과 아이들〉
지나온 길(과거) 탓에 고단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길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밑거름을 삼는 나로 바라볼 수 있어요. 지난날을 살아내고서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고요히 사랑하는 오늘일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하루일 수 있고, 웃음을 짓는 하루일 만합니다. 눈물길도 웃음길도 나란히 삶길입니다.
볕이 그득한 마을길을 거닐면서 〈책과 아이들〉로 찾아듭니다. 닷쨋달부터 열첫쨋달까지 일곱 달 동안 〈책과 아이들〉에서 ‘깃새글꽃(상주작가)’으로 이야기밭을 일구면서 글밭을 짓기로 했습니다. 함께할 다섯 가지 이야기밭을 어느 날짜에 어떻게 꾸릴는지 이야기하고, 앞으로 어떤 얼거리와 줄거리로 새롭게 생각씨앗을 나눌 만한지 이야기합니다.
늦봄볕은 대단합니다. 첫봄과 한봄을 지나서 첫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넉넉히 비추며 보듬어요. 늦봄볕은 늦봄꽃을 깨우고 늦봄잎을 북돋우고 늦봄바람을 일으킵니다. 늦봄볕은 느긋하면서 넉넉한 숨볕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오늘을 그리면서 스스로 이 하루를 사랑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무엇이 즐거운지 바라보려고 할 적에 바로 스스로 온통 즐거운 노래빛으로 채웁니다. 괴롭던 하루가 가뭇없이 녹습니다. 고단하던 오늘이 사르르 풀리면서 사라집니다.
살림말을 혀에 얹으면서 쓰기에 스스로 살림을 가꿉니다. 숲말을 마음에 담으면서 나누기에 스스로 숲으로 피어나며 싱그럽습니다. 꽃말을 고이 돌아보며 펴기에 스스로 곱게 피어납니다. 사랑말을 생각하고 그리기에 반짝이는 별과 함께 사랑하는 길을 엽니다. 꿈말을 노래하며 베풀기에 초롱초롱 눈망울이 반갑습니다.
우리 몸은 마음을 따라가요. 우리 마음은 또 몸을 따라가요. 우리 눈은 우리 손발을 따라가요. 우리 손발은 어느새 우리 눈을 따라갑니다.
느긋하지 않은 마음이기에 속으로 ‘느긋느긋’이라는 낱말을 읊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몸짓이기에 다시금 속으로 ‘넉넉낙낙’이라는 낱말을 욉니다. 여태 하지 못 한 일을 받아들이고, 이제 펼 일을 생각합니다.
한자말 ‘상주(常住)’는 ‘깃들다’를 가리킵니다. ‘깃 + 들다’입니다. 바람을 타면서 하늘빛을 노래하는 뭇새는 깃털을 품기에 가벼우면서 눈부셔요. 이른바 ‘상주작가’란, 책숲에 깃들면서 글밭을 일구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작은글꾼이라고 느낍니다. 쉰 해를 살아오며 처음으로 받는 글일인 터라, 어쩐지 새말 한 마디를 짓고 싶습니다. 깃새지기가 되려고 합니다. 깃새글꽃으로 서려고 합니다. 깃글내기로 만나고, 깃글하루를 심는 오늘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ㅍㄹㄴ
《뭉치와 만도 씨》(안미란 글·정인하 그림, 창비, 2017.12.8.)
《내 우산 같이 쓸래?》(캐더린 페터슨/이수련 옮김, 달리, 2004.10.15.)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열다섯 살의 용기》(필립 후즈/김민석 옮김, 돌베개, 2011.11.21.)
#ClaudetteColvin #TwiceTowardsJustice #클로뎃콜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