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한달읽기 한해읽기
여러 어린배움터에서는 ‘온읽기’를 한다. ‘책 하나를 통째로 읽기’인데, 우리나라 배움책(교과서)은 줄거리나 한두 대목만 슬쩍 실을 뿐이라서, 이렇게 겉훑기를 하기보다는 ‘온책읽기’를 해야 제대로 헤아려서 알 수 있다는 배움길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나는 좀 갸우뚱한다. 배움책은 책을 통째로 못 싣고, 아이들한테 책 하나를 통째로 가르칠 수도 없다. 배움길이란,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나설 노릇이다. 길잡이로서는 “자, 이런 책이 있단다. 책을 다 알려줄 수는 없고, 같이 다 읽을 수도 없지만, 너희가 스스로 짬을 내어 느긋이 읽어 보렴.” 하고 들려주고서 마쳐야 맞지 않을까? ‘온읽기’까지 시키기보다는 ‘고루두루 온갖 책을 알려주고 짚어주기’를 할 적에 배움터다우리라 본다.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이란, 으레 ‘여섯달읽기’나 ‘한해읽기’이다. 책 하나를 놓고서 꽤 오래도록 짚고 다루고 되새기고 돌아보고 다시 살피고 또 헤아린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가 헤아릴 ‘읽길(읽는길)’이라면, 책 하나를 한 해를 통틀어서 늘 곁에 놓고서 틈틈이 되읽는 매무새 하나가 있어야 할 만하다.
슥 다 훑었다고 해서 읽기를 마쳤다고 여기지 않는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훑었으면 ‘훑기 애벌’이다. ‘읽기’란, 이야기와 줄거리를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서 풀어내고 품는 틈을 내고서 차분히 돌아보는 날을 ‘이어’서 ‘이야기’를 ‘일구’고는, 내가 나로서 이곳에 ‘있는(사는·살림하는·사랑하는)’ 뜻을 느끼고 헤아려서 꿈을 스스로 ‘이루’려는 하루를 누리면서 ‘익히’는 길이라고 여겨야 옳다고 본다. 그러니까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읽기’를 모르기도 하고, 배운 적이 없고, 가르치지 못 할 뿐 아니라, 제대로 다가서지도 못 하곤 한다.
이를테면 낱말책은 ‘온삶읽기’를 하는 꾸러미이다. 낱말책을 슥 훑었기에 치워도 될까? 아니다. 어제 찾아본 낱말을 오늘 다시 찾아보더라도 낱말뜻과 낱말결과 낱말빛을 새롭게 바라보게 마련이다. 낱말책은 우리가 숨을 내려놓는 끝날까지 곁에 두는 ‘온책’이다. 이러한 낱말책과 비슷하게, 우리 마음을 움직이거나 북돋우는 책이라면 여섯 달이나 한 해쯤, 적어도 한 달쯤, 자리맡에 놓고서 날마다 몇 줄씩 되새길 노릇이지 싶다. 이렇게 ‘한달읽기’나 ‘한해읽기’를 해본다면, 굳이 붓바치(비평가)가 책을 풀어내는 글을 안 읽어도 우리 눈과 마음과 넋으로 모든 책을 헤아릴 뿐 아니라, 알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