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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풀한테 손발이 없을까? (+ 그릇꽃)



  해파리한테는 골(뇌)이 없다고 잘못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해파리는 해파리로서 골이 있다. 해파리는 해파리라는 숨빛으로 바라보아야 해파리가 어떤 몸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해파리가 사람을 바라보며 “넌 왜 몸을 무겁게 치렁치렁 달고 살아?” 하고 묻는다면 사람으로서 무어라 대꾸하겠는가? 해파리가 사람을 쳐다보며 “넌 골이 크다고 여기는데, 그렇게 커다란 골로 무슨 일을 하니? 이 별에서 총칼을 만들어서 마구마구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짓을 그렇게 커다란 골라 만드니?” 하고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풀한테 ‘손’이나 ‘발’이 없다고 여기는 말은 어쩐지 안 맞지 싶다. 아니, 하나도 맞을 수 없다. 풀꽃나무가 사람을 보면, “어머, 쟤들은 어떻게 뿌리도 잎도 줄기도 가지도 없어? 저러고 어찌 살아?”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정작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뿌리나 잎이 없어도 걱정하거나 따지지 않으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으려면 늘 들숲메바다를 품을 노릇이다. 우리가 시골을 등지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메바다를 통째로 잊어버린 뒤에,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그리워서, 숨통을 틔우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도시) 겹집(아파트)에서 집에 꽃그릇(화분)을 들였지 싶”다. 1970∼80년대까지도 ‘도시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마당에 풀꽃나무를 두었을 뿐인데, 풀꽃나무를 더 두고 싶으나 자리가 모자란 탓에 그제서야 꽃그릇도 마련해서 곳곳에 더 놓기도 했다.


  ‘분재(盆栽)’는 일본말이고, 일본살림이다. 우리나라는 ‘그릇꽃’을 굳이 안 했다. 풀과 꽃과 나무를 그릇이 담아서는 풀꽃나무가 제 숨빛을 잊고 잃도록 괴롭히는 굴레라고 여겼다. 우리나라는 ‘그릇풀꽃’이 아닌 꽃밭과 마당과 뒤꼍을 꾸렸다. 우리나라는 ‘그릇풀’로 풀꽃나무를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서려면 발바닥을 땅바닥에 디디며 일하고 놀아야 하듯, 풀꽃나무는 언제나 드넓은 들숲메에 뿌리를 내리고 해바람비를 머금으며 스스로 푸르게 빛날 노릇이라고 여겼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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