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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28. 개구리 죽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려고 새벽에 논두렁을 걷는데 곳곳에 밟혀죽은 개구리가 납작하다. 한봄에 이르러 논개구리가 꽤 깨어나서 보름쯤 운다 싶더니 그제부터 갑자기 끊겼다.


  무슨 일인가? 한봄부터 여름 내내 울어야 할 논개구리가 모조리 어디 갔는가? 사흘 동안 논개구리 울음소리를 못 들으며 갸우뚱하는 시골사람이 있으려나? 서울사람은 개구리소리를 쳐다보거나 마음쓸 틈이 없을 만하다.


  그러나 개구리가 사리지면 논밭과 시골이 다 죽는다. 참새와 제비가 사라져도 온통 풀죽임물판으로 뒤덮이며 다같이 죽음수렁에 휩쓸리고 만다.


  우리는 ‘AI·챗·관세·경제·대선’서껀 쳐다볼 수 있되, 먼저 봄소리에 귀기울일 노릇이지 싶다. 소리죽은 봄이란 사람살이도 죽음으로 뒤덮는다는 뜻이다. 온소리가 넘실거리는 봄을 잊을 적에는, 모든 숨결이 서로 다르면서 하늘빛으로 푸른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줄 나란히 잊기에, 넋을 잃고 얼까지 빼앗긴다.


  4월 28일에 고흥서 서울 가는 버스에 빈자리가 없다. 미리 끊었기에 걱정은 없다. 그런데 5월 1일에 고흥 돌아갈 버스에도 빈자리가 없네. 그나마 순천 거쳐 돌아갈 자리는 있다. 시골은 시외버스가 늘어야 할 텐데 군수나 지역구 의원은 버스를 안 타니, 그들 손아귀에서 시골은 더 망가진다.


  누가 걸어야 할까. 그들이 안 걷더라도 나부터 걸으면 된다. 누가 아이곁에 서야 할까. 그들이 아이곁에 없더라도 내가 아이곁에 서면 된다. 시골 들녘에도 서울 복판에도 개구리가 울고 어울리는 푸른빛을 되찾기를 빌면서 걷고 또 걷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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