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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 김륭
  • 9,720원 (10%540)
  • 2018-09-07
  • : 178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30.

노래책시렁 496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창비

 2018.9.7.



  예부터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을 적에는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난 어른이 아닌걸?” 하고 둘러대고 아무 말이나 뱉으면서 마구 할퀴는 사람이 잔뜩 있습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어른이 아냐. 난 못난이야.”라든지 “난 어른이 못 돼. 난 못난 사람이야.” 하고 내세우면서 막말을 일삼거나 이웃을 할퀴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이 마치 아이들한테 ‘너희도 나처럼 어른이 안 되어도 돼!’ 하고 외치는 듯한 꾸러미입니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안 되어도 된다’고 이런 글을 내놓아도 되는지요? 스스로 어른이 아닌 줄 안다면, 창피해서라도 글을 안 쓸 노릇이지 싶고, 더더구나 어른이한테 들려줄 글은 안 쓸 일이라고 봅니다. 막말(욕)이란 ‘스스로 더럽힌 마음으로 남도 더럽히고 싶어하는 끔찍한 덫’입니다. 막말을 아무리 한들 후련하거나 개운할 수 없습니다. 막말을 할수록 마음을 스스로 옥죄고 할퀴고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만 먹는 사람’으로는 안 갈 노릇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집안일을 기쁘게 맡으면서 어깨동무라는 사랑을 새롭게 배워서 나눌 사람’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제발 철부터 들고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뭐가 나올지 모르고 / 땅을 파헤치는 두더지처럼 / 나는 그 애 마음속에 / 굴을 팠지 내 마음대로 /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느라 /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지 // 그 애가 누구냐고? / 학교 운동장을 다 파헤쳐 봐라 / 그 애 그림자라도 나오나 / 하지만 열심히 파다 보면 / 세상 모든 두더지를 / 만날 수는 있을 거야 (모든 첫사랑은 두더지와 함께/13쪽)


안경 쓴 나무늘보 같은 / 우리 선생님 손에 잡히는 여자는 / 여자가 아니겠지 // 1학년이겠지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학년 2/22쪽)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하물며 몸통까지 우리에게 다 주고도 (달과 돼지/30쪽)


시골 외할머니 집에 누워 있는데 / 감나무가 아직 익지도 않은 / 감을 자꾸 던진다 // 감보다 큰 혹이 머리에 /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 기분이 나쁘다 //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참지만 / 좀 심하다 //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던지는 땡감이 무슨 질문 같다 / 개똥 같다 (땡감/54쪽)


욕을 하고 싶은 날이 있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착한 아이는 욕을 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착하다고 소문난 문방구 아저씨도 욕을 하는 날이 있지.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홱 뱉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 그런 날은 욕을 사러 가지.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어떤 욕이 좋을까?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나는 혀 위에 욕을 올려놓고 생각하지. (초콜릿/104쪽)


+


가끔씩 하늘에서 내려온다

→ 가끔 하늘에서 내려온다

23


거미줄을 타고 공중을 내려오듯

→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듯

23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밥자리로 부르면

→ 우리 마을 가장 가난한 집으로 모시면

30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달은 잔칫자리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30


집에 누워 있는데

→ 집에서 눕는데

54


혹이 머리에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기분이 나쁘다

→ 혹이 나는 듯해 자꾸 손이 간다. 싫다

54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감나무도 싫은 일이 있다고

→ 감나무도 들끓는 일이 있다고

→ 감나무보 발끈할 일이 있다고

54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버금어른처럼 떠억 멋을 부리고서

→ 꼰대처럼 떠억 잘난 척하고서

54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 마구 뱉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지

→ 까대지 않으면 죽을 듯한 날이 있지

104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 막말은 곱게 차분히 골라야 해

→ 꾸지람은 곱게 찬찬히 골라야 해

104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 어떻게 할퀴어야 걔가 더 싫어할까

→ 어떻게 깎아내려야 걔가 더 아플까

104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 나는 거칠게 말할수록 즐겁지

→ 나는 마구마구 뱉을수록 신나지

10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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