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5. 정의는 정의롭지 않다
“정의는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다.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를 보면 “저놈은 글러먹었으니 우리 쪽에 있는 이분을 모셔야 해.” 하고 덧붙인다. 다른켠에서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는 “아냐. 그놈은 안 돼. 우리 쪽에 있는 이분이야말로 알맞아.” 하고 맞선다. 그런데 그쪽도 저쪽도 똑같이 “안 정의로운 민낯”이기 일쑤이다. 두 쪽은 으레 누가 똥이 더 묻었는지 따지고 싸우고 겨룬다.
참말로 올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스스로 올바르다고 안 외친다. 올바른 사람은 그저 이녁 보금자리에서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면서 허물없이 도란도란 즐겁다. 참으로 올바른 사람은 너나없이 어울리고, 위아래를 안 가른다. 굳이 ‘성평등·페미니즘’을 소리높여 안 외치더라도, 올바른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는 누구나 아름답고 어깨동무를 한다.
참으로 곧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스스로 안 내세운다. 곧바른 사람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호젓하게 흙을 만진다. 곧바른 사람은 나무를 돌보고 품으면서 집을 둘러싼다. 밖에서 보면 ‘집’이 아닌 ‘나무’만 보일 만큼 보금자리를 돌보기에 곧바른 사람이다. 곧바른 사람은 풀벌레를 동무하고 멧새를 이웃한다. 곧바르기에 풀씨를 손바닥에 얹고서 스스럼없이 노래한다.
그야말로 바른(정의로운) 사람은 어린이 곁에 선다. 시골에서 살든 서울에서 지내든, 바른 사람은 어린이하고 눈높이를 맞추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걷고 함께 잠든다. 바른 사람은 힘을 부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이름을 드날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돈을 뿌리지 않는다. 바른 사람은 올바른 사람하고 동무한다. 바른 사람은 곧바른 사람하고 이웃한다. 이리하여 바르고 곧바르고 올바른 사람은 덩실덩실 춤노래로 하루를 짓는다.
이윽고 이 세 사람 곁으로 ‘꽃바른’ 사람이 찾아온다. 꽃처럼 바른 사람은 ‘바른길’이 제대로 밝게 빛나는 별로 피어나도록 ‘사랑’이라는 씨앗 한 톨을 건넨다. 사랑이라는 씨앗은 그저 수수한 말씨이다. 아주 흔하게 쓰는 ‘숲’이나 ‘사람’이나 ‘일’이나 ‘비’나 ‘밥’이나 ‘옷’ 같은 낱말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담는다.
여러모로 보면, “정의롭다고 외치는 사람”이 쓰는 말은 대단히 허울스럽고 어렵고 딱딱할 뿐 아니라, ‘끼리질(제 담벼락 감싸기)’을 일삼는다. 올바르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돈을 움켜쥔 그들이지 않은가? 곧바르다고 외치지만 막상 그들끼리 이름을 거머쥔 얼거리 아닌가? 바르다고 외치는데 속낯을 보면 시키먼 꿍꿍이가 가득하지 않은가?
그들도 이들도 저들도, 더구나 우리까지도, 하나도 안 올바르고 안 곧바르고 안 바르고 안 꽃바르기에, 무안나루에서 숱한 사람이 애꿎게 죽었어도 안 쳐다볼 뿐 아니라,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안 가리고, 이 끔찍한 짓이 일어날 빌미가 된 벼슬아치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우리말 ‘바르다’는 ‘밝다’를 밑뜻으로 품는다. ‘바른쪽(옳은쪽·오른쪽)’이 바르지 않다. 밝게 눈뜨기에 바르고, 별처럼 밤을 밝히기에 바르다. 겨우내 고이 잠든 눈을 새봄에 밝게 틔우는 꽃눈에 잎눈이기에 바르다. ‘입바른’ 말만 외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렇다. 오늘날 ‘정의(正義)’를 외치는 이는 하나같이 ‘입바른(입만 바른 척하는)’ 허울이자 허깨비이자 허접하고 허름하며 허술한 허수아비로구나 싶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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