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1.26.
꽃씨로 꽃누리
《티어문 제국 이야기 4》
오치츠키 노조우 글
모리노 미즈 그림
반기모 옮김
AK comics
2022.7.15.
콩을 심어 콩이 나고, 팥을 심어 팥이 납니다. 깨를 심어 깨가 나고, 볍씨를 심어 벼가 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셈입니다. 안 심고서 거두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마음에 걱정을 심어 걱정이 돋고, 근심을 심어 근심이 나고, 끌탕을 심어 끌탕이 자랍니다. 미움씨를 심으니 미움짓이 일어나고, 싫음씨를 심으니 싫은짓이 불거져요.
꽃씨를 심는 우리는 꽃밭을 이룹니다. 온이나 즈믄 톨을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한 톨이나 두 톨을 심으면 넉넉합니다. 언제나 가장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 돋고 나고 자라고 퍼지면서 숲을 이룹니다. 하루아침에 확 일으키기를 바라기에 으레 걸려서 넘어져요. 차근차근 느긋느긋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가꾸려는 손길이기에 꽃누리로 가게 마련입니다.
《티어문 제국 이야기 4》(오치츠키 노조우·모리노 미즈/반기모 옮김, AK comics, 2022)을 돌아봅니다. 어느 나라를 이끄는 임금집안에서 딸로 태어난 아이는 예전에 멋모르고서 마구 힘을 휘두르면서 콧대높이 살아다가 들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목아지가 뎅겅 잘렸다지요. 그런데 이 아이는 목아지가 잘리자마자 골로 가지 않았다고 해요. 목아지가 잘려서 죽으면서 문득 새로 태어납니다. 아직 철없이 굴지 않던 무렵인 또다른 누리로 나아갔습니다.
틀림없이 ‘목아지가 뎅겅 잘리며 죽는’ 데까지 또렷하게 떠오르는데, 오늘 눈을 뜨고 보니 목아지가 멀쩡하게 붙었다고 해요. 이제 이 아이는 마음을 싹 갈아엎습니다. 옛삶에서 스스로 보인 철딱서니없는 짓이란, 스스로 죽음길인 줄 뻔히 알아차렸거든요. 옛삶에서 이미 목아지가 뎅겅 잘려 보았으니, 다시는 목아지가 잘리는 끔찍한 죽음길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철든 사람으로서 철든 마음을 가꾸고 싶어요.
얼핏 우리 손에 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목돈을 신나게 흩뿌리면서 뭇사람을 우리 발밑에 부릴 수 있겠지요. 한동안 돈자랑으로 우쭐대며 삶을 망가뜨리는 셈인데, 스스로 망가지는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손에 쥐었다는 이름이나 힘으로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바보짓을 일삼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한 끼니에 밥을 몇 그릇 먹으려는 셈일까요? 한 끼니에 한 그릇이면 넉넉할 텐데요. 때로는 하루 한끼나 두끼만 단출히 누려도 즐거울 텐데요.
한 손에는 꽃씨를 얹고서 고이 사랑으로 돌아보면서 심을 노릇입니다. 다른 손에는 풀씨(나물씨)를 놓고서 곱게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맞이할 노릇입니다. 우리는 나물하고 남새를 나란히 누리는 나날입니다. 들숲바다에서 피어나는 숨결을 반갑게 마주하면서, 밭자락에 심는 숨빛을 고맙게 누릴 적에 사람답게 깨어나요.
살림길하고 등지기에 죽음길입니다. 죽음길에는 아무 사랑이 없어요. 죽음길에는 ‘좋다·싫다’라는 갈림길만 끝없이 나옵니다. 죽음길을 알아차리는 눈썰미를 북돋아서 함께 살림길을 바라보기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살림길은 사랑길로 이으면서 숲길로 뻗고 사람길로 눈부십니다.
ㅅㄴㄹ
“키스우드 씨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한 거예요. 당신 덕분에 무사히 도시락을 만들 수 있었는걸요.” (29쪽)
‘보통 귀족은 머리를 숙이지 않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미아 황녀는 시시한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지 솔직하게 감사 인사를 하는군.’ (30쪽)
‘아아, 감동에 가슴이 벅차요. 이렇게 친한 사람들과 함께 가판을 돌아다닐 수 있다니.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해요. 그래서 눈물이.’ (37쪽)
‘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아벨 왕자님. 승리한 후 먹는 도시락이 훨씬 맛있을 거예요.” (49쪽)
‘아벨 렘노 왕자. 그는 본인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분석한 후 포기하지 않고 상대에게 이길 방법을 생각했어.’ (104쪽)
“안느, 저를 불렀나요?” “저기, 비가. 감기에 걸리실 테니 이동하세요!” “아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 시합은, 제가 끝까지 지켜봐야 해요.” (111쪽)
#ティアムーン帝国物語 #断頭台から始まる、姫の転生逆転ストーリー #杜乃ミズ #餅月望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