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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삶읽기 2023.5.29.

수다꽃, 내멋대로 42 딴청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나로서는 일곱 살까지 신나게 놀던 나날이 있고, 여덟 살에 이르러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깃든 나날이 있다. 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둘레 어른들이 으레, 거의 날마다, 자주 하던 “그래, 여덟 살 때까지는 내버려 둬. 그때까지는 실컷 놀아야지.” 같은 말이 있다. 더 옛날에는 더 달랐겠지. 더 옛날에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딴짓·딴청’이라 여기지 않고 ‘놀이’나 ‘소꿉’이라 여겼다. 그러나 ‘틀’에 가두려 하면 모든 놀이·소꿉은 그만 ‘딴짓·딴청(주의력 결핍)’으로 여기면서 ‘나쁜짓(태도 불량)’으로 못박더라. 아무래도 ‘틀(제도권·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는 눈으로는 이렇게 보겠지. ‘틈(자유·기회·시간·소통·대화)’을 두지 않는 ‘틀·굴레’이기에 ‘단단’하게 ‘틀어막’고 ‘틀어쥔(거머쥔)’다. 사람들 넋(영혼)을 틀어쥐어서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나라이다. ‘틈(자유·기회)’이 없으니, ‘틔울(싹틔울)’ 수 없고, ‘틈(시간·대화)’이 없으니, ‘열(생각을 열·말길을 열)’ 수 없다. 우리가 배움터(학교)를 따로 세워서 겪은 지는 이제 고작 온해(100년)이다. 온해 앞서라 하더라도 누구나 배움터를 다니지 않았고, 가난하거나 종(노예·백성·천민)이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은 얼씬조차 못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거나 모르는데, 1400년대에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이란 글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배우거나 구경할 수 있던 사람은 한줌(1%)조차 안 된다. 한문을 익혀서 쓰던 나리(권력자)가 아니면 훈민정음을 듣거나 배울 길이 없었다. 종살이(노예살이·농부·천민)를 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짓밟힌 삶이었고, 종이나 붓은 만질 수 없었고, 종이랑 붓은 너무 비싸기까지 했고,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살던 사람들은 나리(양반·사대부·권력자)가 쓰는 글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려다가 들키면 볼기(곤장)를 얻어맞거나 목숨까지 잃었다. ‘훈민정음·정음·언문·암클’은 1900년대에 접어들 즈음까지 참말로 ‘아무나 못 배우고 못 쓰던, 숨죽이던 글’이다. 나는 1993년에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쳤는데, 그무렵에는 배움터에서 이 대목을 가르쳐 주었고, 적잖은 책에 이 대목이 나왔지만, 어쩐지 요새에는 이 대목을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마치 1400년대부터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억눌린 숱한 사람들’이 글살이(문자생활)를 할 수 있었다는 듯, 거짓말을 가르치는 분이 부쩍 늘었다. 아무튼, ‘딴짓·딴청’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보면, ‘시키려는 쪽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한다’요, ‘심부름을 맡기려는 쪽에서 말하는 대로 안 듣는다’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왜 딴짓이나 딴청을 할까? 어른이 시키는 일·짓·말이 썩 달갑지 않거나 어렵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살필 틈이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다 아는 말’이라지만, ‘아이로서는 다 모르는 말’이기 일쑤이다. 아이 곁에서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말씨’를 손질하거나 걸러야 하는 까닭을 다들 제대로 모르는데, 아이들한테 너무 어려워서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거든. ‘어른들이 교과서나 책으로 적은 글’은 ‘아이한테는 뜬구름잡는 헛소리’이거나 ‘우격다짐으로 외워야 하는 굴레’이곤 하다. ‘숲·숱하다·수북하다·수박·수수하다·수두룩하다·쉽다·쉬다·숨·숨다’는 말밑이 같으며 얽힌다. ‘스스로·스승·스님’도 말밑이 같으며 얽히는데, ‘숲·스스로’는 만난다. 아주 쉬워 흔한 우리말은, 서로 잇닿으면서 생각을 북돋우고 틔우며 연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서 ‘쉽고 수수한 우리말’을 써야, 어른으로서도 어질게 철이 들고, 아이로서도 즐겁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마음틔움·생각열기·사랑나눔으로 뻗게 마련이다. ‘집(보금자리·살림터)’이라면 가두지 않는다. ‘틀(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면 가둔다. ‘집’은 심부름이나 시킴질이 안 흐르는, 함께 짓고 가꾸고 일구어 나누는 ‘날개’이다. ‘틀’은 오직 심부름과 시킴질이 판치면서, 외워야 하고 똑같아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수렁’이다. 아이들은 차림옷(교복)을 입으면 안 된다. 똑같은 옷을 맞춰 입히는 데는 ‘틀’인데, 이런 틀은 ‘학교·군대·감옥·정부’인걸. 옷과 몸짓과 말이 틀에 박히면 ‘날개(자유·민주·평화·평등)’를 못 편다. 마음껏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라야, 날개를 펴면서 틈을 내어 철빛을 읽는 어른으로 자라날 만하다. 틀로 틀어쥐어 억누르고 똑같이 맞추면, 틀에 박히고 말아 마음도 생각도 사랑도 살림도 집도 없이 ‘학생·회사원·지식인’이라는 굴레에 갇혀서 종살이로 흐른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몸짓·말짓·눈짓’은 ‘딴짓(다른 짓)’을 해야 맞다. 손가락도 꼬물거리고, 발가락도 꼼지락거리면서 놀아야 아이답다. 아이 아닌 어른도 매한가지이니, 얌전히 앉아서 듣기만 하거나 외우기만 해서는 둘 다 갇힌다. 이른바 ‘수업·강의’에서도 왁자지껄 떠들고 수다를 펴면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교사(강사)·학생’ 모두 날개를 펴며 신나게 새길을 배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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