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문학 강좌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만났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름만 아는 철학자였지만 냉큼 도전했다.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강독하면서 참가자들이 서로 생각과 해석을 풀어낸다는 점, 여기에 전공교수님이 도우미로 이끌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을 20세기 현대철학의 방향을 바꾼 철학자라고 하는 만큼 그의 철학에 접근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단 몇 줄의 문장, 한 페이지에 불과한 글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한두 시간 투자하기를 수차례, 그럼에도 그의 철학에 가닿을순 없었다.
두세 달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의 언어에 대한 철학이었다.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도 그는 매우 엄격했다. 사소한 말이라도 세상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했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선 논쟁 자체가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증명할 수 없으면 그냥 입을 다물라는 의미인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최근 출간된 <당신의 말이 곧 당시의 수준이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다룬 책이다. 여덟 개의 챕터로 나누어 그의 언어철학을 현대인의 삶과 연결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라고 해서 난해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풀어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고 핵심적인 대목을 꼽자면 본문의 첫 대목 ‘언어의 한계가 곧 당신의 한계다’였다. 평소에 내가 알고 있거나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의 양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라는 의미이다. 때로 낯선 단어를 접하면 그 개념을 배우고 익혀 일상에 적용해나가야 사고의 폭이 나 표현능력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의 한계”는 단순한 언어 부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틀, 인식의 폭, 상상력의 한계를 함께 포함한다. 내가 가진 언어가 빈약하면 사고도 좁아지고, 쓰는 말이 거칠어지면 마음도 그에 맞춰 거칠어진다. -17~18쪽
하나 더 꼽자면 세 번째 챕터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이다. 얼핏 보면 너무나 당연해서 누가 그걸 모르겠냐 싶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말)는 논리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식탁 위에 사과가 있다’처럼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개념도 알지 못하면 머릿속으로 상상(그림을 그리)하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빨강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빨강을 말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빨강은 보일 수 있을 뿐,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어의 한계다. -62쪽.
카페나 음식점에서, 혹은 길을 가거나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자꾸 귀가 솔깃해진다. 예전엔 그냥 백색소음처럼 무심히 넘기려고 했다면 이젠 그들이 하는 단어와 어투, 표현에 신경이 쓰인다. 주변 사람이 듣거나 말거나 목청 높여 개인사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언젠가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사람들 대화에서 “헐” “대박” 빼면 대화가 안된다. 심각한 문제다’ ‘특정 몇 개의 단어를 금지시키면 대화조차 불가능하다’고. 순간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됐다. 이제라도 내 언어의 한계를 직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