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정말 오랜만이다. 오래전 <밤의 피크닉>을 시작으로 한동안 그녀의 작품과 일본소설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소소한 일상에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듯 섬세한 장면 묘사에 매료되었다. 때론 일본소설 특유의 기이함이 낯설기도 했지만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기대감을 주는 작가였다.
그녀가 최근 <커피괴담>을 내놓았다. 핏빛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 톤에 다소 섬뜩한 그림까지. 표지만으로도 괴이함 200% 장착한 격이다.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한껏 높아진 궁금증에 묘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잔혹한 호러는 아닐까 잔뜩 긴장했지만 <커피괴담>의 이야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 다몬을 비롯한 작곡가 겸 스튜디오 뮤지션 오노에, 펑크 로커 같은 의사 미즈시마, 검사 구로다 네 명의 친구들이 비정기적으로 모여 카페를 순례하면서 각자 괴담 하나씩 들려주는데 한 곳에서는 하나의 괴담만, 다음 괴담은 장소를 이동해서 들려주는 형식이다. 일본의 천년고도인 교토에서 시작한 커피괴담은 요코하마, 도쿄, 고베, 오사카로 거쳐 다시 교토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고받는 괴담은 어떤가. 소름이 끼칠 만큼 괴이하거나 무섭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다. 중년의 나이까지 살면서 일상에서 겪었던 기이한 현상이나 경험, 독특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신기하다는 느낌을 준다. 오래된 찻집을 순례하면서 괴담을 이어가는 그들을 따라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인물을 마주치거나 우연히 던진 말 한마디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먼 도시에서 잃어버린 우산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에이 설마, 싶지만 듣다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들. 겨우 이런 얘길하자고 여러 도시의 카페와 찻집을 전전하다고? 그것도 중년의 한 덩치 하는 남자들 네 명이? 어이 상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그게 또 <커피괴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휴일 오전, 사람의 이동이 뜸한 집 근처 카페에서 이 책을 읽었다. 뒤로 뒤로 술술 책장을 넘기면서도 머리에선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다가 예상과 다른 마무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괴담’이란 제목에만 너무 얽메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괴담 그 자체가 아니라 괴담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랜만에 만난 온다 리쿠에게서 호되게 한 방 얻어맞고 정신을 차려보니 건너편 테이블에 중년남성 다섯 명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때론 웃고 때론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들. 그들도 어쩌면 일종의 커피괴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괴담은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 21세기가 되면 과학의 진보와 함께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중략)
“나는 괴담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