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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뒹굴뒹굴

남편이 우리나라랑 조선이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했다. 


나는 중국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이 오성홍기를 드는 데 거부감은 없지만, 개천절 대신 건국절을 쓰자고 하면 화가 난다. 

이런 내가 나도 신기해서 열심히 생각을 한다. 

중국의 웹사이트에서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표시했다는 기사(https://v.daum.net/v/20231128091302937)를 보면서도 그럼 윤동주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생각한다. 윤동주는 식민지 조선에서 이주한 조선인 부모가 만주에서 낳았는데, 한국인이라고 써야 맞나? 조선인이라고 써야 맞나?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이기는 한데, 중국인이라고 써 있으면 기분 나쁜 건 맞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쓰는 게 맞나? 조선족이라고 쓰는 건 틀린가? 

대한민국건국절을 제정하는 것이 오천년 역사를 무화시키는 처사라고 흥분하는 나는, 그럼 국가란 민족국가를 생각하는 건가, 싶으면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여기 살고 있지도 않는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은 우리나라지만 애석하게 나뉘어진 것 뿐이라고도 생각한다.


1. 김성동 천자문

이 책을 따라 쓴 적이 있다.


따라 쓰다가,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속담?의 정반대 되는 어떤 말을 만났다. 


愛(사랑 애) 育(기를 육) 黎(검을 려) 首(머리 수)

백성을 친자식처럼 아껴 기르면, 臣(신하 신) 伏(엎드릴 복) 戎(오랑캐 융) 羌(종족이름 강)모든 오랑캐들도 신하가 되어 엎드리고, -p40


오랑캐,라는 말이 민족,이라면, 여기서 민족국가라는 개념은 없다. 신하가 되어 엎드릴 수 있는 존재, 하나의 국가는 아니더라도 같은 의지로 묶여서 복종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 전제조건은 '친자식처럼 아껴 기르는' 거고. 

검은머리,라는 표현을 백성으로 풀어 쓴 저자는 귀족을 제외하고 노동하느라 검게 탄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그래서 백성이라고 설명한다. 

국민,이 아니라 백성이다. 백가지 성씨.


2. 춘추전국 이야기

무시무시한 전쟁의 이야기들이다. 무섭게 읽는다. 

제자백가가 등장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논쟁한다. 나라가 부강하다는 것은 백성이 많다는 거고, 그 백성들은 전란의 와중에 흩어져서 떠돈다. 더 나은 나라, 덜 착취하고 더 평화로운 나라에 정착한다. 이미 형제를 제후로 봉한 각각의 나라들이 종주국과 제후국이라는 춘추의 질서가 존재했으므로, 각각의 나라는 적대하는 순간에도 그 나라의 국민이 가지는 국가 정체성은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나라,와 나라에 속한 백성은 국가와 국민이 가지는 감각과 같지 않고, 민족국가와 민족이 가지는 감각과도 다르다. 백성,이라는 말은 민족,이라는 말을 지우는 것도 같다. 

이런 말을 옮겼었다. 


위 무후가 중산에 있을 때 이회에게 물었다."오나라는 왜 망했습니까?""자주 싸우고 자주 이겼기 때문입니다.""자주 싸워 자주 이기는 것은 나라의 복일진대, 유독 오나라만 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주 싸우면 백성이 피폐해지며, 자주 이기면 군주가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군주로 하여금 피폐해진 백성들을 부리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경우는 천하에 드뭅니다. 교만하면 마음대로 하고, 마음대로 하면 극단적으로 사물을 추구합니다. 피폐하면 원망하고, 원망하면 극단적으로 꾀를 부립니다. 아래 위가 모두 극단으로 치닫고도 오나라는 그래도 오랫동안 버틴 것입니다. 이것이 부차가 자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 p162-163, 춘추전국이야기 7 '전국시대의 시작' , 공원국 지음 



3. 한자의 역설

https://blog.aladin.co.kr/hahayo/12511341 )


다른 말을 쓰지만, 글로 이야기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본다. 

'친자식처럼 아껴 기르면, 오랑캐라도 신하가 되어 엎드린다'는 태도로 정치한다. 하나의 문자로 모순을 품고,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 

통일로 흐르는 문자를 가지고, 세상을 표현한다. 







4. 종이동물원

https://blog.aladin.co.kr/hahayo/13547749

언어는, 삶을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기호다. 

국가는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변화하면서 사람들을 통제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국경선도 사람도 변한다.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있다. 

누구라도 왕이 될 수도 있을 백가지 성씨의 씨줄이 있고, 그럼에도 하나가 되어 적에 대항해야만 한다. 어쩌면 작은 땅의 제후국에 불과하였더라도, 이 땅에서 우리는 자치권을 잃지 않았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왕이나 신하를 보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거란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내 목이 명분이라면 지금 가져가라는 신하도,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라면 내 자손은 사지 없이 태어날 거'라며 뻔뻔하게 거짓을 고하는 사신도 부끄럽지 않다. 

부모, 자식의 은유 가운데, 군주와 백성이 존재하는 동아시아 문화 안에서 백성을 보호하려는 지배층의 노력은 눈물겹다. 

어쩌면 전쟁의 순간, 위기의 순간, 우리는 우리,라는 감각을 느낀다. 


여전히 'Korea'인 우리 나라라는 나의 감각은 이 땅에 살고 있으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KBS는 이걸 극으로 만들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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