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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앨리스 웡
  • 24,300원 (10%1,350)
  • 2024-06-28
  • : 542




4점  ★★★★  A-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일곱 번째 선정 도서

(모임 날짜: 2025년 9월 27일 토요일)






잘 만든 자서전에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서전을 쓰는 글쓴이다. 소설을 쓰고 남는 시간에 서평과 에세이를 써온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한 편의 스트립쇼와 같은 어느 예술가의 자서전을 만났다. 오웰이 읽은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아도취가 심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다. 오웰은 달리의 자서전을 비판적으로 비평한 글에서 ‘잘 만든 자서전’의 중요한 요소를 강조했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일을 들추어낼 때만 신뢰할 수 있다. 자기 마음속에서 바라본 삶은 누구에게나 그저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보기 좋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조지 오웰, 『성직자의 특권: 살바도르 달리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중에서, 오웰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279쪽)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미는 자서전의 주인공은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고 거들먹거린다. 하찮은 자서전은 같잖은 거짓말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다. 진솔하지 않은 자서전은 독자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회고록(memoir)은 자서전(autobiography)을 조금 닮았다. 회고록은 자서전과 다르게 글의 주인공이 여러 명이다. 회고록의 글쓴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종이에 불러들인다. 회고록(reminiscence)을 쓰는 내내 글쓴이는 친애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절의 추억에 잠긴다(reminisce).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두가 회고록의 주인공이 된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은 잘 만든 회고록이다. 회고록의 주인공 앨리스 웡(Alice Wong)은 장애 인권 활동가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이 점점 수축하는 희귀 질환을 앓았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휠체어와 호흡기는 삶을 연장해 주는 의료 보조 기기가 아니다. 삶과 결합한 몸의 일부다. 앨리스는 기계와 한 몸이 된 자신을 ‘사이보그적 존재’라고 부른다. 사이보그적 존재는 SF에 나오는 허구의 피조물이 아니다. 유기체와 기계의 잡종이다. 사이보그적 존재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쓴 『사이보그 선언문』[주1]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개념이다. 해러웨이가 새롭게 정의한 사이보그는 정신과 육체, 유기체와 기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사회 현실 속의 피조물이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잡종의 책’이다. 에세이, 시, 일기, 인터뷰 기록, 사진과 음식 조리법까지 어우러져 있다. 여러 종류의 글과 그림이 섞인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의 매력은 하나둘씩 늘어난다. 저자의 인터뷰는 정상성과 비장애성의 문제점을 정확히 찌르는 창이 되어주기도 하고, 일기는 즐겁게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앨범이 된다.


저자는 욕망에 충실하다. 음식을 먹는 일에 진심이다. 식탐이 많은 것을 인정한다. 군것질은 인생의 낙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이다. 음식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각자에게 주어진 음식을 다 같이 먹는 행위는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해지게 만든다. 해러웨이는 식탁에 함께 앉은 식사 동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려(compan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반려는 종(種)의 경계를 없애고 서로 돌보면서 관계를 맺는다.[주2]


저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침을 자주 뱉지 않으면 그녀는 숨을 쉴 수 없다. 타구(唾具) 컵은 그녀의 호흡을 도와주는 친구다. 책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 『타구에 바치는 송가』는 지저분해 보이는 침을 다시 보게 만든다. 더러운 분비물로 여기는 침은 우리 몸의 일부다. 침은 첫 번째로 음식물 소화에 관여한다. 저자는 침을 ‘함께 사는 적’으로 인식한다. 호흡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침은 인간의 취약성을 떠올려준다. 침은 소중하다. 그래서 저자는 침의 분비를 줄이는 약을 먹기보다는 타구 컵에 침을 뱉는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장애인에 대한 삶의 지식이 부족하면 장애인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투명한 괴물이 된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두려워한다. 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장애는 건강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불편함을 수반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을 계속 피하게 만드는 부당한 편견이다. 장애인은 항상 그늘 속에 지내지 않는다. 장애인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 어딘지 잘 안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자립성’이다. 장애인은 행복을 그러모으기 위해 꾸준히 움직인다.







<안경 쓴 사이보그 cyrus가 만든 주석>








[주1] 원제는 『사이보그 선언문: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이 글의 전문은 해러웨이의 저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황희선 · 임옥희 함께 옮김, arte, 2023년)과 《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년)에 수록되어 있다.



[주2] 도나 해러웨이, 최유미 옮김,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갈무리, 2022년),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29쪽과 48쪽.


《종과 종이 만날 때》 서평

<모순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 2022년 9월 22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23077





* 74쪽




 

수전 웬델 [주3]



[주3] 수전 웬델(Susan Wendell)은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강지영 · 김은정 · 황지성 함께 옮김, 그린비, 2013년)을 쓴 미국의 여성학자다. 


《거부당한 몸》 서평 <정상을 거부한다>, 2018년 12월 5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514815






* 417쪽




 

스테이시 파크 밀번,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주4]

 

 


* 420쪽





 

 2019년 3월 10일 <내 조상들의 지평에서: 크립의 전승과 우리 운동의 유산>(On the Ancestral Plane: Crip Hand Me Downs and the Legacy of our Movements)이라는 제목으로 스테이시의 글이 게재되었다. (중략)

 나는 스테이시의 예지력 있는 글을 내가 편찬한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에 수록했다. 책이 나오기 불과 1~2주 전인 6월에, 스테이시는 세상을 떠났다. [주4]



[주4] 앨리스 웡이 엮은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상호 교차성, 삶과 정의에 관한 최전선의 이야기들》(박우진 옮김, 가망서사, 2023년)에 스테이시 파크 밀번(Stacey Park Milbern)과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Leah Lakshmi Piepzna-Samarasinha)가 쓴 글이 실려 있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번역본에 표기된 밀번의 글 제목은 <양말의 계보: 내가 물려받은 장애 운동의 유산>이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의 원제는 ‘Disability Visibility’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애 가시성’이다. 이 용어는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에 수록된 저자의 인터뷰 「미국장애인법」에 언급된다.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저서 《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 정의가 만드는 세계》(전혜은 · 제이 함께 옮김, 오월의봄, 2024년)도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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