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에밀 시오랑을 기억하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나. 온수행 7호선 지하철, 휴가철이라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애매해서인지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우리집에서 온수까지 대략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는 아주 좋은 시간이다. 특히 앉아서 갈 수 있으면 맘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목적지가 멀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렇게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더위 때문인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나를 흘끔거리시더니 이내 하시는 말씀. ˝학생이야?˝
참으로 난감할세. 반말로 물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참 민망하여 나는 할아버지를 찬찬히 봤다. 다시 할아버지 말씀하시길 ˝기집애들이 이런 시간에 앉아서 편하게 책이나 읽고, 시집이나 갔어?˝

음......일단 사실관계 정리 차원에서 나는 대답했다. ˝시집은 갔고, 지금은 학생입니다. 그런데.....왜 궁금하니? 그게?˝

내가 이 말을 함과 동시에 예상했던 건 할아버지의 욕설과 이에 맞서는 나의 집요한 비아냥이었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처음 그의 질문을 받았을 때 느낀 당혹감을 느끼셨는지, 아니면 내게서 살의를 느끼셨는지 잠깐 머뭇거렸다.

그리고 몇 초가 흐른 후 할아버지는 기대했던 욕설을 하더니 언능 지하철에서 하차하신다. 따라 내려서 끝장을 볼까 싶었으나, 나는 지금 예쁜 고등학생들에게 사회적 경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협동해야 하는지, 인간은 결코 이기적인 판단만을 하지 않는다 등을 이야기 하러 가야한다.

슬프다. 밥법이가. 슬프다. 아이들에게 거는 나의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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