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검색하다가 <리플리: 더 시리즈>(2024)를 알게 되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평가도 좋아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원작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다섯 권으로 된 동명의 소설이 나왔고, 이 외에도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 맷 데이먼의 <리플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플리>는 총 5권으로 이뤄진 연작 소설로, 1편에 해당하는 <재능있는 리플리>는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청년 리플리가 부유한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그의 삶을 살아간다는 범죄소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과 생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 심리, 스릴러물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허접하고 볼품없는 삶을 사는 리플리는 디키의 귀국을 설득해 달라는 그의 아버지 요청으로 이탈리아로 떠난다. 리플리는 그곳에서 호화롭게 생활하는 디키를 만나게 되고, 그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게 되면서 질투를 넘어 심한 모욕감까지 느끼게된다. 결국 디키로 살기로 결심하고 바다에서 그를 살해한다. 리플리는 점점 디키처럼 입고 말하고 생각했다. 그의 풍족한 삶에 빠져들며 동일시하게 되고, 이를 숨기려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또 다른 삶, 어쩌면 우리 안에 숨겨진 희망이자 욕망이 아닐까.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선생님 말을 무시하고 그 대학을 지원했다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주식을 계속 갖고 있었다면... 과 같은 일상적인 바램부터, 내가 톱스타이거나 대기업의 상속자라는, 혹은 엄청난 금액의 로또 당첨자였으면 하는 다소 엉뚱한 바램 역시 내가 갖지 못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리플리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그 연장선에서 본다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고 영화나 유튜브를 보는 것도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여행사나 작가, 감독, 유튜버는 나를 대신하는 디키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기반이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저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돌아올 곳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되돌아올 현실이 있기에 더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으리라. 현실이 상상 속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면 정해진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모니터 속 게임 캐릭터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리플리는 디키의 껍데기를 쓰고, 그의 삶을 살아보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막혀 리플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속이려 했지만 이는 거울 속의 일시적인 허상일 뿐 실재할 수 없었다.
그의 기행은 자극적인 릴스에 갇혀 단편적인 흥밋거리만 쫓아가는 우리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불로초를 찾아 세상천지를 돌아다니는 진시황의 꿈처럼, 있지도 않는 허상을 찾아 액정 화면 속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우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리플리의 일탈이 멋있고 낭만적이게 보일 수는 있어도 영원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점은 변함없어 보인다. 전원 코드만 뽑아버리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화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신기루가 매혹적이기는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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