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에서 수영과 관련된 책을 검색하다가 찾은 청소년 소설로, 유광으로 처리된 번쩍이는 파란 표지엔 아주 잘 생긴 남녀 한 쌍이 수영장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만화 같은 느낌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청소년 소설이 갖는 특징, 가령 읽기 부담 없는 분량과 머리 아프지 않고 술술 읽을 수 있지 않을지 하는 마음에 책을 펼쳤다.
고등학교 수영 선수인 유영은 최근 기록이 향상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등 온 나라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빠의 기대와 주변의 부담감으로 결승전에서 기절하게 되고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유영은 잠시 쉴 목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이때 전학 온 무명 아이돌 그룹의 재현이 자신이 곧 있을 수영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한다며 유영에게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녀는 돈만 생기면 수영을 그만두고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승나하고, 한밤의 비밀 수영 과외를 시작한다.
삼류 드라마 같은 비현실적인 주인공 조합과 조금은 뻔해 뵈는 스토리, 단편적인 인물 설정이지만, 주변의 관심이 두렵기만 한 유영과 그 관심에 목말라하는 아이돌 가수인 재현의, 상반되지만 은밀한 관계(?)가 나름 재미난다.
아무도 없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난장을 부리는 상상처럼, 불 꺼진 수영장에 홀로, 혹은 단둘이 들어가 수영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좀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두루 재밌는 요소를 갖춘 것 같다.
특히, 폭발해버린 유영과 아버지와의 고조된 갈등이 사랑과 우정, 믿음으로 하나씩 치유되는 과정이 흐뭇하다. 좀 뻔한 결말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정감이랄까... 아무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화려한 빛과 이를 지탱하는 그림자가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심야의 비밀 수영 클럽>은 물과 함께하는 수영과 비슷한 것 같다. 물은 한없이 부드러운 듯하지만 차갑고 강하며, 잡힐 듯하면서도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이런 물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대 이기려거나 맞서면 안 된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수영이 되고, 편안해지는 것 같다.
"팔을 쭉 뻗으며 발끝을 움직였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니, 부드러운 물결이 나를 감싸 안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수영을 하고 있으면 꼭 물과 포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묘한 편안함이 있다고나 할까."(p97)
수영을 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 머리를 들면 몸은 가라앉고 머리를 숙이면 비로소 나아갈 준비가 된다. 팔과 다리의 힘보다 부드러움과 균형으로 물을 가른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때 수영장 바닥에 박힌 타일은 흘러가 버린 시간처럼 아득하다. 거친 파도에 떠다니며 보는 해안 도심의 풍경은 가소롭다. 수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재현의 시합을 보며 느꼈다.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노력이 퇴색되는 건 아니라는걸. 나는 지금껏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매몰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쉽게 단정 지었다."(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