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는 너무 아름다워 몽환적인, 그래서 상상인지 현실이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계를 그리고 있는데, 지나치게 암울한 제목이 마음에 걸려 읽기를 망설이기도 했다. 바다 수영을 하다가 검푸른 수면 아래를 볼 때 느껴지는 으스스함이랄까. 바위인지 테트라포트인지 모를 시커먼 물체에 달라붙어 흐느적거리는 수초는 흡사 검은 머리를 산발하고 나를 노려보는 괴물 같았다. 아무튼 바다에 대한 좋은 느낌 대신에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올 것 같은 칙칙함에 읽기를 꺼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용기를 갖고 책장을 펼친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도 있지만, 어둡고 추운 음침한 바다도 있기에,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는 동심의 바다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수장된 아픈 바다도 존재하기에....
소설은 주 무대는 다합의 블루홀이다.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꿈의 바다. 아니 강한 하강조류로 많은 다이버의 목숨을 앗아간- 최근에는 블루홀로 빨려 들어가는 다이버(유리 립스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놀라게 했던, 그 바다!
앨리는 남자친구 딜런과 함께 그의 여동생 제나의 신혼여행에 동행한다. 앨리는 제나와의 관계가 껄끄러웠지만, 제나와 그녀의 남편이 된 알버트와 오래전부터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던 딜런을 생각해 동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합의 화려한 바다를 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잊혀졌다.
이들 네 명은 다합 블루홀과 그 주변에서 다이빙을 했는데 제나가 갑자기 강한 하강조류에 휩쓸려 버린다. 앨리는 딜런과 알버트를 따라 블루홀의 어둠 속으로 제나를 찾으러 들어가지만, 강한 조류와 부족해지는 산소로 인해 제나를 찾을 수 없었다. 알버트를 먼저 올려보낸 딜런은 의식을 잃은 앨리와 함께 가까스로 살아 나왔다
이창준, 전문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젊은 작가의 이력을 보고 반신반의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캄캄한 블루홀 속으로, 작가가 구성해놓은 시간 속으로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블루홀에서 일어난 사고는 앨리 앞에 나타난 의문의 쪽지와 맞물려 궁금증을 더해가고, 일상의 시간마저 한순간에 이상하게 뒤틀어졌다. 달리의 <흐르는 시계> 그림을 처음 봤을 때처럼 소설 속 분위기가 갑자기 미스터리하게 바뀌며, 더욱더 깊은 바다 속으로 끌어들였다. 현실이 꿈이 되고, 기억이 현실이 된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잠수하고, 카약도 타지만, 마음 한 켠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망망대해의 공간에서 티끌처럼 존재하는 나는 바다에 비하면 너무 미약한 존재다. 갑자기 덮친 파도나 조류로 인해 흔적도 없이 바다에 휩쓸린다 해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겠지? 공간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여기서 지낸 시간들이 사라진다는 것이기에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꺼져가는 의식의 끝자락을 잡고있는 동안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에 오롯이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멈추면 현실이든 상상이든, 순간은 영원이 되어 나를 집어 삼키리라. 어쩌면 이런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를 더욱 깊은 구멍으로 집어넣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폭풍 속으로>(1991)에서 패트릭 스웨이지는 태풍 속으로 몸을 던졌고, <그랑블루>(1988)에서 장 르노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니지, 지금 뭔 생각이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바로 지금이잖아, 그때 가서 영원할 것 같은 환상이 깨진다면 돌이킬 수 없어, 뚱딴지같은 생각 집어치우고 현실의 시간에 충실해!
<죽음의 바다>는 다른말로 표현하자면 '시간의 바다'가 아닐까 싶다.
시간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들지만, 모든 것을 희석하고, 변화시킨다. 그 거대한 회오리 속에 자신을 지키고 버틸 수 있어야겠다. 책과 함께, 이창준 님의 책을 읽으며~ ^^
"시간이 갈수록 생생하던 기억이 영화에서 본 것 같이 변하고... 그리고 어디선가 스쳐간 것 같은 기억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사진을 보지 않으면 기억도 나지 않게 변해요..."(p201)
#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먹거리, 그리고 멋진 놀거리까지 없는 것이 없는 바다!

해운대 바다수영(2019)

욕지도 프리다이빙(2019, 20m)

연화도 카약킹(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