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재밌는 책이 없나 하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추천한 책이 <구미호 식당>이다. 노란색 표지에 기다란 판형 못지않게 제목이 독특했다. 전설이나 애니에서나 들어봤던 '구미호'라는 동물과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식당'이라는 단어가 만나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고 첫 페이지를 펼친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나(왕도영)는 저승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이민석)와 함께 49일 동안 이승에서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나와 아저씨는 구미호 식당 안에서만 머물러야 했기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아저씨는 전직 요리사였던 특기를 살려 '크림말랑'을 요리한다. 그리고는 이 매혹적인 맛을 통해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49일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구미호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요리라는 향을 만나 빠르게 읽힌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크림색의 얼큰하고 깊은 맛이 계속 스며 나오는듯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그토록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찾아야 하는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알 듯 말 듯 한 재료와 비밀에 쌓인 조리 방법처럼 독자를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면과는 다른, 거부할 수 없는 진실에 놀라게 된다.
천년을 기다리며 인간의 간을 먹어야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구미호. 하지만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것은 자신의 영생을 위해 타인을 죽여야만 하는 이기심뿐이다. '나'라는 아집에 갇혀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구미호 식당>은 폭력에 대한 슬픈 진실을 담고 있다. 가족과 연인, 친구, 이웃은 사회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숨어 있는 이기적 마음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상처를 준다. 사소한 실수가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라 믿었던 행동이 구속과 폭력으로 변질하기도 한다.
화려한 맛으로 사람들을 구미호 식당으로 유혹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처럼 도영과 민석은 열등감과 집착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붙이게 되었고, 이는 외부로 통하는 벽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한 발만 나가면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도 우물 안에 갇혀 세상을 낭비했다.
이 두 사람은 어쩌면 나와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척, 대범한 척, 당당한 척하지만, 마음속에 가둬놓은 옹졸한 마음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기준과 편의에 따라 세상을 재단해 버린다. 공평하고 민주적인 세상을 부르짖지만, 본인에게 돌아오는 사소한 손해는 용납하지 못한다.
노란색의 <구미호 식당> 표지(내가 읽은 판형)를 보면서 내 안에 숨어 있는 구미호를 감추는 보호색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