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을 타고 창원 진해만에 있는 지리도로 투어를 갔던 적이 있다. 섬의 가로 폭이 300m가 되지 않는 작은 무인도로 내륙에서 가까운 데다 카약을 랜딩할 수 있는 해변이 있어 동호회원들과 종종 왔던 곳이다. 우리는 준비해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즐기고, 낮잠을 자며 따뜻한 오후를 즐겼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수영하며 섬 주변을 둘러봤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잠수도 했는데, 거대한 돌무더기 사이로 손바닥만 한 물고기와 함께 해초도 보이고, 성게도 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자 저만치서 색색의 조각들이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진녹색의 잡초가 가득한 도로가에 분홍빛으로 피어있는 코스모스 같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니 옹기종기 군락을 이룬 멍게가 아니던가. 아기 주먹 크기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기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을 보는 것 같았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카약을 탈 때면 남해 무인도에서 본 별이 계속 떠오른다. 물과 함께했던 좋은 기억들이 잠깐의 이벤트처럼 스쳐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이렇게 바다에 빠지다 보니, “바다에 좀 더 머무를 수는 없을까?”, “수영이 일상이 되면 어떨까?”, “그럼, 해남(해녀)는 어떻게 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더해져 <명랑 해녀>까지 읽게 되었다.
서울깍쟁이로 바쁘게 생활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프리다이빙을 배우게 되었고, 휴가차 내려왔던 제주에서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엉겁결에 한달살이를 했던 저자는, 제주의 매력에 빠져 살림살이까지 모두 옮겨왔다. 그리고는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정식 해녀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덩달아 해남이 되었다.
물질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어설프지만 차근차근 해녀의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반짝하다가 말겠거니 하며 색안경을 끼고 보던 마을 해녀들도 바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조금씩 받아들였고, 그녀도 조금씩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찐해녀가 되어갔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촌하는 것도 어려운데, 직접 해녀가 되어 물속으로 뛰어들다니... 나무에 매달린 번데기가 화려한 나비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검은 잠수복을 입고 태왁(수면 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도구)을 둘러맨 체 바다로 향햐는 그녀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물론 책에서 표현하지 못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도 많으리라. 기존의 생활과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바다가 일이라는 게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 자칫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기후는 변하면서 수온이 올라가고, 환경오염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해산물은 줄어들고, 해녀에 대한 인식도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명랑해녀’라는 닉네임처럼 이를 극복하고 해녀가 되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해녀는 물론이고 게스트하우스(명랑해녀홈스테이)를 운영하며 바다와 관련한 여러 활동도 많이 하는 듯 보였다. 이 책을 출판할 때보다는 좀 더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진 모습이다. 아무튼 제주 해녀가 되었을 때의 긴장과 설렘을 간직하며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쉽지만, 한겨울인데다 확산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쉽지가 않다. 그나마 공영수영장 자유수영에 당첨되어 물맛은 볼 수 있지만, 바다의 개방감과 포근함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다에 들어가면 해변에 두고 온 도심의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꽉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바다에서는 오롯이 혼자이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 바다는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는다.
바다는 별이다.
* 명랑해녀(블로그) : https://blog.naver.com/happy_haen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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