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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느린 기적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을 읽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빅 픽처>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이니 그 비슷한 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은 빅 픽처도 읽지 않음.)

 

미국의 정치적 격변기인 6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한나 더컨을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진보적 지식인인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나는 부모님의 불화, 예술가인 어머니의 불안정한 심리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안정적인 삶에 정착하고자 의대생 댄과 일찍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아 답답한 시골 마을에서 사서로 일하며 지내던 중에 아버지 부탁으로 진보활동가 토비아스 저슨을 숨겨주게 된다. 한나는 시아버지가 위독해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토비아스 저슨을 집에 들이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버지의 부탁을 결국 수용한다. 

 

한나는 한순간의 열정에 휘말려 저슨과 동침하게 되어 곤경에 빠진다. 저슨은 실은 무장테러에 연관되어 FBI의 추적을 받게 되어 캐나다로 도피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한나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저슨은 한나를 협박해 유유히 캐나다로 도피하고 한나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생 가족에게만 헌신하리라 다짐한다.

 

1부에 이렇게 한나의 초기 생애가 소개되었고, 2부에서는 한나의 안정적인 현재의 삶이 그려진다. 남편은 정형외과 의사이며 자신은 교사로 일하고 있고, 딸과 아들은 잘 성장하여 펀드매니저와 변호사로 충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은 남부러울 것 없는 모습이지만 딸 리지가 유부남 의사와 사귀다 버림 받고 실종되면서 한나의 삶 역시 철저하게 부서진다. 딸이 추문에 휩싸인 이런 최악의 상황에 이전에 한나가 도피시켰던 운동가 저슨이 회고록을 내어 과거의 불장난을 싸구려 로맨스로 포장한다.

 

한나와 그녀의 딸 리지의 삶이 황색언론과 세간의 무자비한 호기심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지고 남편 댄 역시 그녀를 단번에 내친다.

 

한나가 평생의 진정한 벗 마지와 함께 이 난관을 타개해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 소소하게 한나의 삶을 응원하는 주변 인물들을 보고 나니 콧등이 시큰. 

 

딸 리지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던 경찰이나 한나의 집을 수리해준 업자, 그리고 반전을 만들어낸 빌리까지 중요한 순간 필요한 도움을 준 이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친구 마지는 이런 친구가 현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초인적인 인물이다. 암으로 투병하며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친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열성을 다한다.    

 

결국 한나는 명예?를 회복하지만, 남편도 떠났고 딸은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다 읽고 나니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의 삶에 생채기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각각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미미해 보여도 한 인간의 생은 시대상황에 정말 크게 휩쓸린다.

 

다음으로 부모의 어떤 면을 증오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자녀 역시 부모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나의 어머니-한나-한나의 딸 리지.

 

각자가 다르고 독립적인 여성 같지만 심리적으로 남성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어 안타깝다.

내 안에 있는 모습이기도 하기에.

왜 여성들은 그토록 사랑을 갈망하는지.

 

부모님의 불륜으로 상처받았지만 한나는 자신도 비슷한 과오를 저지르고 딸아이도 순간적으로 이상한 열정에 휘말리게 된다.

 

*

이 소설의 제목 연방의 주에서 유니언은 사전을 찾아보니 결혼생활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연방이 어떤 공동의 목적 하에 세워졌지만 주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처럼 가족도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잘 기능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한나의 집안이지만 아들 제프리는 극우 보수에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되어 엄마를 공격한다. 나중에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어 제프리가 엄마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뿐이다. 서로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기에 따로 지내며 가끔 만나는 게 최선이다.

 

핏줄로 이어진 자녀와 달리 애정에 기반한 남편과의 연합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관계가 부부 사이일지도 모른다.

 

평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댄의 황당한 행보에 마음이 아프고 씁쓸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존엄을 저버리는 미국의 황색 저널의 현실을 폭로한 부분이 실감났다. 우리나라 티브이 00이나 채널 00 류는 아주 양반이다. 

 

 

*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았던 삶이 실은 아주 허약한 기반에 놓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지는 캐나다 어딘가에 살아 있고

한나는 프랑스로 떠날 수 있어 다행이다.

 

가족이란...... 부부란......

실은 너무나도 허약한 연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내가 있는 한

삶은 지속될 것이고

 

허약하지만

느슨하게 결합되어

서로를 인정하며

그렇게 살아내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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