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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스














(왼쪽이 개정판이고 나는 오른쪽의 구판으로 읽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고 그래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리뷰 쓰기를 포기했는데, 그러자니 또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운거다. 


일단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살'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살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철학적인가! 하고 깨달았다.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재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단은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p.364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얼마나 간단하며 명백한 진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살에 대한 부분만큼은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살에 대한 부분에서는 당연하게도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생각이 났다. 사지마비가 되고나서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윌'과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루이자'가 나온다. 자살은 단순히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 혼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살은 복잡해진다. 내가 내 죽음을 결정하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제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극한 슬픔이다. 그렇다면, 내가 슬프기 때문에 너는 죽지마, 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죽기를 결심한 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슬픈 주변사람을 위한 것인가. 


앤드류 솔로몬은 이런 자살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충부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순하게 죽음이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없애는 것, 혹은 나약하기에 내리는 결정이라고 하기에, 자살이 담고 있는 것은 더 크고 깊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고통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어,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한 이 책에서 '가난'에 대해 짚어준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어제 쓴 최미래 소설집의 리뷰에서 빈곤에 대해 언급했는데, 앤드류 솔로몬의 우울증에 관련된 책에서도 빈곤에 대해 얘기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빈곤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며 또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나라는 인간이 '빈곤' 과 '노동'에 대해 특히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p.493



나는 어제 주식거래를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만의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빈곤한 자들은 주식 투자에 끼어들만한 여윳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억을 벌고 또 누군가는 몇십만원을 벌며 아쉽다고 할 때, 빈곤한 자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더 벌어지게 될 그들의 경제적 격차, 그 빈부의 격차에 절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질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병에 걸리는 건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치료하는 건 계급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어 완치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치료받을 돈이 없어 그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은 우울증에 있어서도 그렇다. 앤드류 솔로몬이 쓴것처럼,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저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는 것으로 이 현상은 끝인가. 아니, 그것은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도 질병도 중독도, 가난한 자들이 그것을 치료하지 못하고 가져가는 이상,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가족, 특히나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정신 질환자)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지만 물질 남용이나 자기 파괴적 행위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정신 지체나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녀들은 복지시설이나 교도소 신세를 지기 쉬우며,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안고 사는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어머니의 딸들은 다른 소녀들에 비 해 일찍 사춘기를 겪으며 거의 대부분 난잡한 성생활, 임신, 정서 불안의 문제를갖게 된다. 따라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에 따른 비용에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496




나는 '레이첼 모랜'을 생각했다.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두 성인 어른이 만나 사랑이란 걸 하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병은 치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에 중독된 부모들이라 레이첼 모랜을 비롯한 자녀들은 가난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대신 늘 입었던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한다. 다른 아이들은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어린 형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다른 형제가 아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이 가정에서 버틸 수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 영악해져야 하고 수시로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는 필요없는 죄책감까지도 아이들의 몫이다. (소설이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낸 '루시'도 떠오른다. 루시는 그 가난한 집에서 가장 잘된 케이스였다.)


그런 가정에서 열네살이 되자 레이첼은 엄마로부터 내쫓긴다. 이제 다 컸으니 쉼터에 가서 네 살길을 모색하라는 거였다. 쉼터에 간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어 열넷에 레이첼은 노숙자 신세가 되고, 열다섯에 스물한살의 남자 애인을 만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는다. 그렇다. 레이첼 스스로가 성매매가 답이라고 생각해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애인이 제안했고, 그러자 그것은 안될것도 없는 답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매매로 유입시켰다. 성매매로 그녀가 돈을 벌게 된 데에는 제일 먼저, 가난한 집안 환경이 있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만약 부모가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가난하지 않아서 부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레이첼 모랜의 삶은 어릴 때에도, 그리고 당연히 어른이 되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해 폭넓게 다루면서 당연한듯 가난을 얘기해주어 고마웠다. 이것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빈곤은 질병에도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빈곤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의 마지막 희망 부분은 특히 더 좋은데, 그가 우울증 삽화를 몇차례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한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p.632




이 조언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것이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유용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고,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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