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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스
비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었던 적이 별로 없다. 그럴 때의 비서는 커리어로서의 비서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서의 비서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일 때문에 들어갔지만 하다 보니 보쓰랑 사랑에 빠졌어요.. 이렇게 되어버려. 그 왜 박민영이 나온 드라마 <김비서...가 왜그랬을까?> 뭐 그런 제목이었나, 그것도 안봤는데 대표가 비슷한 나이대의 젋고 잘생긴(드라마 설정 내 보기엔 안잘생김) 대표랑 함께 일하다가 연인이 된다 는 내용 아닌가.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내가 제일 싫어한 건 비서가 보쓰의 넥타이를 만져주는 장면이었다. 우웩-




나는 그 드라마를 당연히 보지 않았고 웹툰으로 조금 보다 말았는데, 웹툰에서도 그 넥타이 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나와 같이 비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당시에 물었었다. **씨는 (드라마처럼) 넥타이를 만져줘야 한다면 어떨것 같아?" 동료는 기겁을 했다. 으.. 진짜 우웩이다. 

내가 그 드라마를 안봐서 그렇지 보았다면 아마 이보다 더 싫은 장면이 있었을 수도..


요즘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를 보기 시작했는데, 4회까지 보고난 다음에야 이게 완결된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 방영중인 드라마라는 걸 알게 됐다. 아 요즘 드라마군. 하여간 간단 내용 정리해보자면, 헤드헌터 회사의 대표 '강지윤(한지만)'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하지만 직원들의 이름은 잘 외우지 못하며 자신에게는 소홀하다. 그래서 책상이고 뭐고 정리가 아주 엉망이야. 아니 정리가 엉망이라는 말은 잘 안맞지. 정리가 아예 안되어있다. 키보드가 서류더미들 속에 감춰져있고 막 그렇다. 자기 사무실에 도착하면 가방을 소파에 던져버리는 게 일. 책상 위 화분은 뭐하러 뒀나, 다 죽이는데. 그런 그녀는 당연히 뭔가 잃어버리는 일이 잦은데 그럴 때마다 서이사(이상희)를 부르고 그러니 하루에도 수십번을 불러.. 이에 서이사는 자신의 대표에게 비서를 구해주는게 시급하다며 알아보다가 정리정돈에 능하며 손 많이 가는 사람 돌보기에도 능한 '유은호(이준혁)'을 대표의 비서로 들인다. 유은호는 전직장에서 누명을 쓰고 잘린 상태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두고 있는 싱글 대디. 그는 요리도 엄청 잘하고 세상 깔끔하고 아이 돌봄에도 능하며 정리정돈이야 뭐 말해 뭐해. 그러니 대표가 던진 가방이 튀어갈 위치까지 계산해 가방 걸이도 놓아두고 항상 문에 부딪치니 문도 손봐주고 책상 위 모든 서류들도 싹 정리해주고 파일들의 라벨링까지 깔끔하게 해놓는다. 그래봤자 하루 지나면 나같은 경우 그리고 강지윤 대표의 경우 다시 원래대로 들어가겠지만 나와 강지윤 대표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있으니, 나에게는 다시 정리해줄 비서가 없다는 것.


보면서 생각하건 당연히 '나에게도 저런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다. 여기서 방점은 '저런' 이다. 아무 비서면 안된다. 바로 '저런'이다. 여기서 '저런' 이란 키크고 잘생기고 젊은, 이 아니라, 세상 깔끔하게 정리하고 라벨링할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 속의 유은호는 어쨌든 돈 받고 하는 일이니만큼 그 일을 잘 해낸다. 아마 돈 받으니 스트레스 받아도 계속 하겠지. 사실 딱히 (드라마라서 그렇겠지만) 스트레스 받아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그냥 지인으로서 혹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으로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정리정돈 하지 못하는 사람의 정리를 어떻게 대신 해줄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겟다. 아마.. 그냥 두지 않을까. 우리 엄마, 내 방 그냥 두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내 여동생은 정리정돈을 아주 잘한다. 그냥 생활 속에서 정리를 한다. 그러니까 나랑 아예 다른 타입의 사람인데, 어릴 때 한 방을 사용할 때는 싸우기도 무지 싸웠는데, 여동생이 대학생 되고 나서부터였나, 나에 대해 그냥 받아들인것 같다. 어느 순간 부터는 내가 오면 자기가 뭘 하다가도 멈추고는 내가 벗은 옷 받아서 옷걸이에 거는 등의 정리를 해주었다. 아마 아무리 싸워봤자 안되니까 그냥 내가 해버리자..하는 마음이 있었던게 아닐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금도 여동생 집에 가면 여동생이 물어줄 때가 있다. 언니 외투 스타일러 돌릴까? 하고. 그리고 내 옷 받아 스타일러 돌려버려..... 하여간 나랑 뇌 구조가 아예 다른 사람이다. 이번에 여행갔을 때도 나는 일단 숙소에 도착해서 짐 풀면 방이 엉망진창 난리가 나는데, 여동생은 필요한 거 빼고 또 새로 산 거 두고 하는 과정에서 세상 깔끔하고 수시로 가방 정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남동생은 나보다 더 심한 스타일이라서, 내 남동생 방 들어갈 때마다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넌 진짜 장난 아니다. 이러고 남동생은 '내가 누나보다 낫지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그러니 나는 다정한 마음으로 잔소리 없이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다정함을 어떻게 '그냥' 바라나. 거기엔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려면 비서를 들이는게 짱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어떻게 돈을.. 주면서 사람을 쓰나요? 내가 버는 돈이 몇 푼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그냥 혼잡한 세상..이 아니라 혼잡한 책상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혼잡한 방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 혼잡 속에 내가 서 있습니다...


어떻게 저 정리를, 라벨링을 할까? 대단하다..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구겨진 손수건이 있다. 내가 오늘 목에 두른뒤에 묶언던 손수건인데 사무실 오니까 안추워서 벗어 던져놨지... 그리고 핸드폰, 핸드크림, 이어폰, 물, 커피, 만년필, 다이어리, 펜, 서류들, 서류들, 서류들, 읽지않은 시사인은 서류 밑에...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그렇다면, 만약 내가 돈이 많다면, 그렇다면, 나는 비서를 들일 것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닐 것 같다. 그건 내꺼 건드리는 거 싫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마도 나는 그냥 혼잡한 세상 속을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게 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가 정리해주는 거 좀 .. 그렇지 않나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맨날 말로는 정리 잘하는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 이런 얘기 하지만, 그건 그냥 말만 그렇지, 내 꺼 정리해주는 거 원하지 않습니다. 이 혼잡한 세상 가운데 나에게는 나만의 질서가 있거등여...(정말?)



자, 이건 내가 비서가 필요한 시점으로 한 이야기이고,

그러나 나는 실제 비서로 일하고 있기도 한 사람으로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비서인가, 에 대해서도 자꾸만 떠올려보게 되었다.


극중 유은호는 아마도 드라마의 설정이긴 하겠지만, 무슨 업무 천재입니까? 정리정돈 잘하는거야 그렇다치는데, 오자마자 막 야근하면서 업무 파악을 합니다. 헤드헌터 지원자에 대한 서류 인사 관련한 것들까지 싹 다 파악해서 대표님의 눈과 귀가 되어줍니다. 대단하죠..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는 대표가 차 안에서 잠드니 그냥 그대로 몇 바퀴를 더 동네를 돌아줍니다. 대단하쥬? 대표가 찾는 자료가 어디있는지 알고 촥촥 대령하고요. 대표가 끼니를 거르면 나가서 죽이라도 사가지고 옵니다. 우리 대표님 여기 빵은 맛있다고 하시는데, 하면서 친구 만났던 빵집에서 빵도 사가지고 대표님 줍니다. 네... 나도 우리 대표 님이 어느 빵을 좋아하는지 알지만, 빵집 갔다가 그 빵 사가지고 오진 않습니다........... 네........















물론 이건 극중에서 유은호도 대표에게 호감이 있어서 나오는 자연발화인 것이기는 하겠지만, 나는 수시로 자괴감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비서로서 실격이다. 나는 쓰레기야... 막 못난 일꾼이다.... 이렇게 되어가지고. 그런데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요, 그러나 사실 누군가 돈 들여 비서를 채용한다면 저런 비서를 원하지 않을까 싶어지는거다. 그런데 나란 비서는 어떤 비서인가, 저런 비서인가... 아닙니다... 저런 비서가 아니지요... 그래서 어떡한다?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걍 다니는거지. 별 수 잇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를 비서로 둔 우리 보쓰의 운명이지. 


데스터니~~



자, 그리고 밥에 대해 얘기하자.

내가 이 드라마에서 진짜 너무나 너무나 마음에 안드는 것은, 대표가 밥을 잘 안먹는다는거다. 이게 뭔 말이냐 하면,

대표인 강지윤은 밥을 잘 안먹어요. 끼니를 잘 안챙깁니다. 왜죠?

그래서 억지로 밥 먹으라고 데려가면 젓가락으로 밥을 코딱지 만큼만 퍼서 먹을까 말까해. 왜죠? 강지윤아, 그러지마..

강지윤은 피식 쓰러지기도 하는데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그렇단다. 툭하면 미팅하느라 다른 사람들 만나고 일 성사 시키느라 애를 쓰는데 밥을 잘 안먹어. 게다가 밤에는 잠도 잘 못자서 수면유도제까지 먹어야한다. 강지윤아, 몸을 챙기자.


그렇게 밥을 잘 안먹는게 영 걸리는 가운데, 하루는 강지윤이 비서한테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갑시다' 햇단 말야? 그러더니 강지윤의 단골 떡볶이집으로 가는거다. 가서는 어쨌든 둘이 왔으니까 늘 먹던거 2인분..을 시키는데, 그게 매운 떡볶이 2인분 인거다. 그런데 비서는 매운걸 잘 못먹는데요. 강지윤은 그러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궁시렁거리지만, 그렇다고 순한맛을 더 시키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생고생하며 떡볶이 2인분을 대표랑 비서가 나눠먹습니다.


왜죠?


왜 매워하는 비서에게 다른 떡볶이를 시켜주지 않죠?


왜죠?


왜 매워하는 비서에게 순대나 오뎅이나 튀김을 시켜주지 않죠?


왜죠?


왜 맵든 안맵든..그냥 떡볶이 하나만 딸랑 먹죠?


왜죠?


왜 배고프다면서 떡볶이만 먹는거죠?


왜죠?


떡볶이,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하아- 떡볶이, 오뎅이나 순대나 튀김이랑 먹으면 더 좋은데.....



나는 잘 먹지 않는 사람을 보면 초큼 스트레스를 받는 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잘먹는 나같은 사람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나염??







이제 맘모스나 먹어야겠다.



**** 아, 극중 조연 '서이사' 로 나오는 '이상희'는 이미지 변신 완전 대성공이네. 영화 <연애담> 의 당신, 맞아요? 지금 역할도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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