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악수하러 온 나무를
한 나무가 그 나무의 악수를 받자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악수하러 온 두 그루의 나무를
그 나무들의 악수를 받자
불이 붙은 그 산의 눈길을
온몸에 빛을 받은 채
불이 붙은 나무를 연주하는 한 남자를
불이 붙은 그의 열 손가락을
불이 붙은 그의 목덜미를
땅속에서 근사하게 올라오는 불의 지휘자를
불의 구더기가 그의 입으로 드나드는 광경을
불새처럼 그의 어깨에서 날개가 펴지는 광경을
그 위에서 보이지 않는 실로 통곡의 피륙을 짜듯
집을 잃고 우왕좌왕 나는 새들을
불의 오케스트라를
*
나무들이 나무를 베는 한 사람을 골똘히 내려다보는 것처럼
나무들이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은 법정스님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나무들이 나무를 연주하는 사람을 듣는 것처럼
저 나무는 내 친구는 아니지만
저 나무는 내 가족은 아니지만
나무에 기대는 내 마음
나무가 연주하는 대지의 찬가
가로수들이 거리를 내내 지켜보는 것처럼
가로수들이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은 것처럼
하늘엔 네이비색 잉크 십 톤이 떠 있고
잉크의 시선이 대지 위로 호수처럼 쏟아져 있고
나무의 림프절들이 그 비에 출렁이고
전세계 어디에나 죽은 나무들의 시선이 있다
나는 울면서 나무 탁자의 나이테를 하나하나 문질러본 적이 있다
*
큰물에 온몸이 휩쓸려 악수를 청하러 온 나무를
또 한 그루 나무가 그 악수를 받고
휩쓸린 나무들이 깃발을 펄럭이는 것처럼
그러다 태풍이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그 비를 다시 맞는 나무가 마지막으로 한순간
벌거벗은 인간으로 변하는 광경을
환히 빛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으로
거기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앵두와 물자두와 물호두를
나는 열매의 이름으로 불리는 과수원 나무들에게 고한다
네 열매를 따가던 주인이 죽었다 너희처럼 이번 큰물에 죽었다
숲속 요양원 할머니들이 잠겼다 너희처럼 죽었다
_김혜순, 「순교하는 나무들」 전문,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