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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난평
  • 조금 망한 사랑
  • 김지연
  • 15,300원 (10%850)
  • 2024-10-21
  • : 8,817

허덕이며 살다 맞은 쉬는 시간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동안 에너지 소진이 너무 컸다.


극소수에게 빚은 leverage, 날개지만, 대부분의 채무자에게 빚은 짐이고, 죄다. 


반려빚. 기발한 조어다.

나도 반려빚이 있다. 

10년도 더 남은 대출만기일을 보니, '저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까? 저 해 여름 지구는 올해보다 얼마나 더 덥고 비가 더 많이 내릴까?' 하는 가늠할 수 없는 질문이 생긴다. 

반려빚은 지병처럼 안 생기면 제일 좋고, 늦게 생길수록 좋은 것이다. 

생겼다면 어쩔 수 없는 것. 


그래도 청년에게 반려빚은 가혹하다. 

만약 반려빚이 20~30대 다수의 삶의 조건이라면, 그것은 이들의 계급위치를 규정하는 구조적 요소다.

소비자/채무자/임금노동자/납세자의 악순환, 이 예속적 주체화 기제의 쳇바퀴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꼭 덜 욕망하고, 더 일해야만 하나?

욕망하는 사용가치를 시장 안에서 최대한 싸게 얻는 것을 넘어 아예 시장 밖에서 얻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기회가 흔치 않지만, 청춘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일을 계속 해야 하겠다 싶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P105
"응. 오래 사귀어서 편하지만, 그래서 설렘 같은 건 없잖아. 그런 거 다시 느껴보고 싶지 않아?" ...

설레는 게 좋은가. 긴장되고 불안하기만 한데. 속을 알 수 없어서, 확신이 안 들어서 서글프기만 한데. 문애는 익숙함이 좋았다 권태를 좋아했다. 나른함, 무기력함, 나태함이 문애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거의 매일이 뚜렷한 희로애락이 없는 희미한 감정의 연속이었고 어쩌면 그건 감정적으로 빈곤한 상태인 지도 몰랐지만 문애는 아무런 이벤트가 없다는 것이, 매일을 겹쳐보면 다른 점이라곤 거의 없는 반복되는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지루함 속에서 무한정으로 행복했다. 그건 문애가 어렵게 이룩한 것, 마침내 구한 것, 쟁취한 것이었다.- P118
아무튼 저를 위해서 거의 매일 기도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좀 그렇잖아요? 그게 무슨 힘이 있어요. 뭔가 고대의 기복 신앙 같은 느낌이고 낯간지러운 거예요. 그래서 됐다고, 난 무신론자고 애초에 그딴 거 믿지도 않는다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나를 위해 기도할 시간은 다른 사람한테 쓰라고 말했죠. 지금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좀 재수가 없긴 한데 그땐 그네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걔는 정말 착한 애였거든요. 됐어, 내 맘이야, 계속할 거야, 그러더라고요. 그땐 그러고 넘어갔는데, 그뒤로 좋은 일이 생긱 때마다 걔 생각이 났어요. 명은이 기도발인가? 이런 것까지 빌어줬을까? 하고 말이에요. - P219
‘기도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옆에는 입을 앙다문 표정의 K의 사진이 작게 붙어 있었다. 나는 별달리 기대하는 바도 없이 그 글을 읽어내려가다가 적잖이 놀랐다. ‘너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는 아직 모르는‘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 칼럼에는 내가 혜미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의 이야기. K는 자신은 기도의 힘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갖는 일을 아예 저버리지는 말자고, 서로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그걸 전달할 기회가 생기면 표현하자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몇몇의 평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 P232
지수의 엄마는 파고를 헤아리며 매일 새벽 기도를 했다. 누구를 향한 기도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수도 모르고 아빠도 모르고 삼촌도 몰랐다. 엄마 자신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절에도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장 아저씨의 배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의 수전처럼 힌두교도도 아니었다. 애초에 기도가 누군가를 향한 것일 수 있을까. 기도는 자신을 잠재우기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기도는 모든 불필요한 말을 없애고 필요한 말을, 바라는 말을 수없이 외는 식이었다. 반복 속에서 그 말에 익숙해지면 다른 말들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가짜였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 그러고 나면 엄마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형수는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요. 삼촌은 자주 기도를 방해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입술을 악물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 일어날 수 없는 일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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