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때 즐겨 읽던 책 중에 '키다리 아저씨'를 빼놓을 수가 없겠지.
삼중당에서 출판된 책이었던 것 같다.
내가 '키다리아저씨'를 읽던 시절에는 이젠 역사로만 남은 세로줄 판이었다.
현대판 신데렐라 같은 줄거리도 줄거리지만,부유층의 딸들이 다니는 여자대학
(남자대학과는 차별화되는..)의 기숙사 생활이 서구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14살짜리의 상상력을 마냥 부풀게 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내게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비쳤던 것은 쥬디의 책읽는 시간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라는 동안 '교양인으로서 읽어야 하는'책을 읽지못했기에
그 부재를 채우기 위해 룸메이트들 몰래 거실에 나와 서너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내겐 너무 행복해 보였기때문이다.
방과 거실이 분리된 호사스러운 기숙사,상상만으로도 푹신하고 안락해보이는
소파,그 소파에 기대앉아 속세를 잊고(?) 책속에 빠져든 소녀의 모습.
그건 나의 꿈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장면을 아름답게 머리속에 그릴 수 있다.
아직도 내겐 이루지 못한 꿈이니까..이젠 소녀가 아니니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리고 작년에 '키다리 아저씨'를 다시 읽게 되었다.
아쉽게도 간략하게 줄여진 문고판 외에는 구할 수가 없었다.
영문판으로 근사하게 장정된 책이 있으리라 여겼던 내 기대는 날아갔다.
이 나이에 다시 읽는 '키다리 아저씨'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그런 걸 '시대의 제약'이라고 하나보다.
막시즘에 물들고,'여성학'이 자라나는 시대에 대학을 다닌 내 눈에 '성차별'적인
글귀들이 하나둘씩 드러난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들만의 대학을 다녀야하고,상류층 부인이 되기 위한 교양수준의
교육 이상이 아닌,이른바 '귀부인 양성소'를 연상케 하는 곳이 내가 꿈꾸었던
그 기숙사의 정체였다.
게다가,그야말로 '아저씨'뻘인 남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동등한
의미의 남편이 아닌,'내 생을 이끌어갈 보호자'로서의 남편이 될 그 남자
(이름 까먹었음..T.T)
하지만,그런 들 어떠하리..다.
난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속하지,그걸 비판할 만한 주제는 못되니까..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행복한 책읽기'의 쥬디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있으므로,내게는 여전히 '행복한 쥬디'이다.
부자집 마나님이 되었으므로 더더욱 '부러운 쥬디'이다.
온 집안에 책을 늘어놓고 책을 벗삼아,아이들 장난감 삼아 지내는 게 내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막상 살아보니 책이란 책은 다 끄집어 내서 이거 한쪽,저거 한쪽
읽으며 지내는 큰 아들이랑,그 책들을 집어던지며 찢으며 거꾸로 읽고있는
작은 아들 틈에서 '책 치우라'고 소리지르는 엄마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래서 현실과 꿈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