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의 만화 <이웃사람>은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딸이 일주일째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문장이 그저 소름끼치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잃게 된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죽고 나서도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에게 한 번도 따뜻한 인사를 건네지 못한다. 그저 두려움에 떨며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는 기척을 느끼기만 한다. 아이는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슬프게 보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무섭고도 슬픈 첫 문장, 첫 장면이었다.
만화보다 더 무섭고 슬픈 현실을 접하기 전까지, 저 문장은 그저 소름끼치고 인상적인 첫 문장이기만 했는데, 이제는 간절한 문장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죽은 아들, 딸들 때문에. 이제는 인양된 세월호와 함께 돌아올 수 있기를...그 아이들...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읽던 밤들이 생각난다. 나는 평생 울 울음을 이미 다 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울음들이 남아서 이 책을 읽는 며칠동안 잠을 갉아 먹고, 몸을 무겁게 하고, 머리를 아프게 했다.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선내로 진입한 잠수사들이 실종자를 찾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머물든 입술을 통해 나오든, 실종자를 찾은 후엔 그 실종자와 함께 어둠을 뚫고 좁은 배 안을 빠져 나와야 하니까요. 잠수사들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실종자가 돕지 않는다면, 결코 그곳에서 모시고 나올 수 없다고.(...) 떠오르던 종후가 멈췄습니다. 쓰러진 침대 뒤쪽에 실종자가 더 있는 겁니다. 저는 틈 사이로 팔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습니다. 손으로 더듬으며 그곳 상황을 머리로 그렸습니다. 침대 뒤 그 좁은 공간에 남학생 세 명이 원을 그리듯 어깨동무를 하고 뭉쳐 있는 겁니다. 종후까지 네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겁니다. 엇갈려 붙은 어깨와 손을 더듬는데 다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 p.81
이 소설은, 세월호 선내에서 실종자들을 수습한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잠수사를 위한 탄원서 형식과, 르포 형식이 번갈아 서술되고 있다. 탄원서에는 실종자들의 수습과정이, 르포 형식에는 외부적 상황들이 때로는 인터뷰 형식으로, 때로는 신문 기사나 인터넷 댓글의 형식으로 나와 있다.
방금 기물이 쏟아졌지만 이젠 벽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목과 뒤통수를 얻어맞는 정도가 아니라 제 목숨까지 위태로울 겁니다. 벌을 서듯 양팔을 든 꼴이었습니다. 목에서부터 어깨를 타고 팔꿈치와 손목과 손끝까지 떨림이 퍼졌습니다. 비수로 관절 마디마디를 저미는 듯 아렸습니다. 그런 저를 향해, 희끄무레한 물체가 아주 천천히, 인사라도 건네려는 듯 곧장 다가왔습니다. 선내로 들어선 후 직선의 움직임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실종자였습니다.
잠수사인 제가 실종자를 찾은 게 아니라, 실종자가 저를 찾아 다가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 p.121
바디팩만 있다면, 민간잠수사가 선내에서 실종자를 발견하자마자 그 안에 모실 수 있습니다. 바디팩에 담아 옮기는 것이 민간잠수사가 끌어안고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여러 번 건의했지만 바디팩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바디팩 삼백 개도 주지 못할 만큼 이 나라가 가난한가 그런 생각도 솔직히 했습니다. - p.134
-미안합니다.
그 잠수사는 분명히 내게 미안하다고 했어. 생각들을 해봐. 잠수사가 내게, 나아가 유가족에게 미안할 게 무엇이 있겠어? 그들은 이 불편한 바지선에서 먹고 자며 실종자를 찾기 위해 잠수하는 사람들이야. (...) 나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을 맹골수도에서 잃은 국민이고, 내 앞에 앉은 사내들은 억울하게 숨진 내 아들을 찾고자 매일 잠수하는 국민이라고. 국민과 국민이 만난 거야. 유가족과 잠수사가 서로 사과를 주고받아선 안 돼. 오히려 우린 함께 국민을 우롱하고 상처를 입힌 자들을 찾고 그들에게 공개 사과를 받아야 해. - p.181
추악한 소문들이 유가족에게만 덧씌워진 것은 아닙니다. 잠수사에 대한 악담도 인터넷에 가득했습니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시신을 발견하고도 일부러 선내에 두고 꺼내 오지 않았다는 댓글을 읽었을 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습니다. - p.264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이 그랬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너무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슬픔과 분노로 솟구쳤다.
작품의 모델이 된 김관홍 잠수사는 2016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소설 쓰는 기술이나마 지녔으니 다행인 걸까.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참혹하다. (...) 김관홍 잠수사라면, 이 여름부터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인양될 때까지, 동거차도 감시 천막 앞 돌 리본 옆에 두 눈 끄게 뜨고 서 있을 것이다.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
그리고 영화감독 변영주는 또 이렇게 말한다. 변영주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까지 얹어 나도 말한다.
"부디 읽어 주세요."
다시, 강물의 만화 <이웃사람>은 살인범의 목소리로 이렇게 끝이 난다.
"죽은 여학생이 일주일째 지하실에서 올라오고 있다."
그들, 계속 살아오라고, 죽인 자들 앞에 계속 이렇게 살아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