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묘한 습관중에 하나가 있다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거나 읽은 책은 좀 뒤늦게 미심쩍어 하면서 본다는 것이다. 대중성 너머에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존재한다는 거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보는걸로 봐서는 나의 천박한 호기심(드러내지 못하는 호기심은 천박하다.) 내지는 이러다 시대에 뒤떨어지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열광할때는 잘난척 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그러나 눈은 그곳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 ‘이게 뭐 그래 대단한거야?’ 하며 슬금슬금 다가선다. 이 책 다빈치 코드도 그렇게 만난 책이다.
지난여름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내가 읽은 책이 10쇄이니 뭘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딜가나 다빈치 코드를 들고 있었고 미디어에서도 다빈치 코드에 대해 쉴틈없이 떠들어댔다. 서점가에서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반드시 이 빨간 책이 올라가 있었으며 인터넷 서점에서도 베스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지난 휴일 어슬렁거리면서 서점으로 가서 이 책을 샀다. (1,2권으로 되어 있었지만 혹시 재미없으면 때려치워야겠다 라는 생각에서 1권만 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다음날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지하 마트에 있는 서점코너로 가서 나머지 2권을 샀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이 내게는 상당히 재미있었음을 밝힌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읽는 동안은 재밌지만 읽고 나서 그다지 남는 게 없다는 점에는 백번 동의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재밌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개념들 혹은 의미들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였다. 당시 모나리자에 관한 이런저런 설들을 (모나리자가 실은 다빈치이다, 모나리자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 모나리자는 임신을 한 여자이다, 모나리자가 신비한 이유는 얼굴 전체가 아닌 오직 입으로만 웃기 때문이다 등등) 스크랩까지 해 두었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가 좋았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 검증되지 않은 설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2궁도의 경우에는 예전에 내 천궁도를 그리는 여동생의 옆에서 유심히 살펴보았으며 (그때 물병자리와 물고기자리에 대해 여동생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타로카드 역시 여동생이 타로카드점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지라 수도 없이 봤었다. (타로카드점을 칠 때 카드를 십자가 모양으로 나열하기도 한다.) 거기다 프리메이슨과 시온수도회는 음모설에 관심이 있었던 덕분에 줄줄이 찾아서 봤었고 파보니치 수열과 아나그램등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모든 암호는 암호학 책을 보면서 봤던 것이다. (암호학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사해문서와 다윗의 별. 길이가 똑같은 십자가 (거꾸로 된건 앵크 십자가였는데 이건 정확히 이름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바포메, 피라미드 등은 예전에 교회를 다닐때 유달리 이교도와 악마숭배등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나름 책을 찾아봤던 것들이었다. 이런 모든게 다빈치 코드에 짬뽕이 되어 있었으니 내가 어떻게 재밌게 보지 않을수가 있었겠는가.
책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 제일 처음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살인에 종교기호학 교수인 랭던이 개입된다. 그리고 또 한사람. 소피 느뵈라는 암호 해독가이자 DCPJ요원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냥 풀어나가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이 두사람은 당연하게 누명을 뒤집어쓴다. (그래야 쫒기면서 긴박감 넘치게 사건을 풀어나가니까) 그러다가 이 소설은 살인 사건에서 벗어나 성서와 성배를 이야기한다. 기독교와 가톨릭 그리고 예수와 막달레나 마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2004년전에 죽은 예수 (내가 아는바에 의하면 이 달력은 틀렸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그냥 틀린 년도를 계속 쓰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수에 얽힌 비밀들이 씨실과 날씰처럼 얽히고설킨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꼭 닮아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잘 만들어진 미국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읽는 동안은 너무도 매력적인 힘을 발산해서 잠시도 손에 놓지 못하게 만들지만 끝에는 맥빠지는 엔딩과 반드시 남녀의 주인공은 엮이고야 마는 것 까지도 빼다 박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베텔스만 코리아의 막강한. 거의 융단폭격 수준의 마케팅 덕분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소설 자체가 조금의 매력도 없다면 아무리 융단 폭격아니라 원자탄을 집중 포화해서 날린다고 하더라도 10쇄까지 가기는 힘들것이다. 이 소설은 분명하게 매력이 있다. 다만 그 매력이라는 것이 조금 가벼울 뿐이다. 사실 소설속에 등장하는 모든 개념들과 가설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널리 퍼져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성배에 관한 것이랄지 비밀 수도회인 프리메이슨과 시온 수도회 같은 경우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이야기들이다. 만약 댄 브라운이 그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만들어냈으면 천재작가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겠지만 그가 한 일은 랭던과 소피를 등장시키고 그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만든것에 불과하다. 즉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만들어놨고 댄 브라운은 그저 그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모자이크를 완성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음모이론을 좋아한다. 인간이 아직 달에 가지 않았다는둥. 지구가 실은 평면이라는둥. 더 심하게는 외계인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미국에서 제작되어서 우리나라에 수입된 X파일이라는 TV프로그램이 누린 엄청난 인기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음모이론에 환장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이야 TV프로그램이 조금만 괜찮아도 폐인이네 어쩌네 하며 네티즌들이 뭉치지만 X파일이 한참 뜰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설명서까지 돌아다니고 실제 사건과 연관지은 파일들이 수도없이 존재하던건 X파일이 시초가 아니었나 싶다. 소설 다빈치 코드는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음모론의 가장 최고봉인 예수의 신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는 진실이 뭔지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온갖 이론들이 떠돌아다니고 저마다 ‘늬들이 여태 속은거야 진실은 바로 나’ 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다빈치 코드를 읽고나서 이게 진실이라고 생각할지 (소설 내용의 기본이 되는 예수의 신성과 성배에 관하여) 아니면 그냥 떠돌아다니는 숱한 음모론중 하나라고 생각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이 하늘아래 새로운 무언가를 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댄 브라운은 음모이론에 추리라는 장신구를 추가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다음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찾은 다빈치 코드와 관련된 사진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아직까지도 이 그림에 대한 설들은 분분하다.

복원전 최후의 만찬.
이 책에서 마리아로 거론되고 있는 최후의 만찬속의 요한.

익명이 손.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복원 후

다빈치 암굴의 마돈나 수정후

수정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비례도

실제 있는 오푸스 데이 뉴욕본사.

조지아 오키프의 장미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거의 엇비슷해 보이는 양귀비 꽃을 대신 넣었다.

로슬린 예배당
디즈니 만화 속의 참회하는 막달레나 그림이 있는 장면
런던 템플 교회

루브루 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

웨스트민스트 사원
빌 게이츠가 구입했다는 다빈치의 노트

바포메
아이작 뉴튼의 묘

이탈리아 르네상스 타로카드

12궁도. (2개는 잘려나가고 없다.) 1.양자리. 2.황소자리. 3.쌍둥이자리.4.게자리. 5.사자자리. 6.처녀자리. 7.천칭자리 8. 전갈자리. 9. 궁수자리 10. 염소자리. 11.물병자리. 12. 물고기자리
크립텍스 (관광용품이라고 한다.)

다빈치가 스케치한 동방박사의 경배
누워있는 기사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유리피라미드.